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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동북아 평화포럼

한반도 평화통일과 기독교의 역활

동북아평화연구원

 
고든콘웰신학대학원은 동북아시아의 평화, 그 중에서도 북한 선교에 쓰임 받을 수 있는 인재 육성을 위해 오랜 시간 동북아평화연구원을 준비해왔다.
2019년 5월 18일에 아시아인 최초로 명예 철학박사 학위를 수여한 양병희 목사(영안교회)를 원장으로 세우면서 사역에 날개를 달았다.
양병희 목사는 2001년 동북아한민족협의회를 발족한 이래 10억 원 상당의 의약품, 양복 2000벌, 봉수 빵공장 냉동설비 등을 지원하며 다양한 대북지원 및 선교활동을 펼쳐왔다.
2019년 10월 21일 대한상공회의소 의원회의실에서 고든콘웰신학대학원 동북아평화연구원과 사단법인 동북아한민족협의회 공동으로 제1회 동북아평화 포럼을 개최하여 한국교회가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방향을 제시하였다. 

동북아평화연구원 포럼


  한반도 정세 변화와 남북관계에 따라 남과 북을 둘러싼 정치적 요인이 평화와 번영에 민감하게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거시적 접근 필요한 때이다.
   금번 포럼은 북한․통일 관련 전문가, 탈북자, 교계인사 등이 머리를 마주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준비를 논의하기 위해 아래와 같이 포럼을 개최한다.

Mobirise
 

1. 주 제 : 한반도 평화통일과 기독교의 역할


2. 일 시 : 2019. 10. 21 (월) 14:00~17:00  


3. 장 소 : 대한상공회의소 의원회의실  


4. 주요프로그램  

   (1) 개 회 식       
      1) 개회사 : 이정익 동북아한민족협의회 이사장, 前 CBS기독교방송이사장 
     
      2) 축 사 : 양양식 前 통일부 차관, 기독교 통일포럼 공동 대표  
     
      3) 기조연설 : 양병희 고든콘웰신학대학원 동북아평화연구원장,  
               
          동북아 한민족협의회 대표회장   
    
  (2) 발표 및 토론       
      1) 한반도 정세와 통일 전후 한국교회의 역할  
       
         - 허문영 박사 평화한국대표, 통일연구원 석좌 연구위원
    
      2) 한반도의 평화와 동북아평화연구원의 비전  
       
         - 닐리 개스톤(Neely Gaston) 前 고든콘웰신학대학원부총장,   
총장특별보좌관       
      3) 성경적 한반도 재통일에 대해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 고세진 前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ACTS) 총장, 前 이스라엘 예루살렘 대학 총장  
   
      4)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과정에서 탈북민의 역할   
       
        -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석좌 교수

개회사




이정익 박사

동북아한민족협의회 이사장
전 CBS기독교방송 이사장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동북아한민족협의회 이사장이자 한국복음주의협의회장 이정익 입니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오랜 시간 정성을 쏟아온 동북아한민족협의회와 고든 콘웰 신학대학원 동북아평화연구원이 함께 “한반도 평화통일과 기독교의 역할”이란 주제로 이번 포럼을 열 수 있게 돼 기쁘게 생각합니다.

  먼저 이 자리를 기획하시며 기도하시고 헌신하신 양병희 동북아한민족협의회 대표회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공사다망하심에도 모든 일을 내려놓으시고 포럼의 축사를 맡아주신 양영식 전 통일부 차관님 감사드립니다.

  오늘 한반도의 평화통일과 기독교의 역할을 제시해 주실 허문영 평화한국 대표님, 닐리게스톤 전 코든콘웰 신학대학원 부총장님, 고세진 전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총장님,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님 등 발표자 분들과 이 자리에 참석해주신 여러분께도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해드립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의 변화와 남북관계에 따라 우리 민족의 평화통일에 대한 희망과 불신이 교차하는 상황입니다. 정치적 요인에 따라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상황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거시적 비전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포럼은 북한·통일 관련 전문가, 신앙의 자유를 찾아 남으로 오신 탈북인사, 우리 교계인사 등이 머리를 마주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준비를 논의하는 생산적인 자리가 될 것입니다.

  이번 행사가 공허한 울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발전하여 한민족의 평화통일에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포럼을 후원해 주신 통일부, 국민일보, 기독교연합신문, CTS기독교TV 등 관계자 분들과 준비를 위해 수고 해 주신 고든콘웰 신학대학원 동북아평화연구원과 동북아한민족협의회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 자리를 빛내 주신 내·외빈 및 참석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거듭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축사




양영식박사

전 통일부 차관
기독교통일포럼 공동대표


    먼저 한반도의 평화통일과 민족복음화를 위한 한국교회의 사명과 실천과제를 숙의하는 귀중한 국제포럼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미국의 명문 ‘고든 콘웰 신학대학원’의 명예철학박사를 수여하시고, 뜻밖에 부설 ‘동북아평화연구원’ 원장의 중책까지 위촉받음으로써 오랜기간 섬겨 온‘동북아한민족협의회’와 함께 통일선교의 길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된 것을 감사하며, 매우 뜻깊게 생각합니다.

  주지하시는 바와 같이, 그동안 양목사님은 성도들과 함께 눈물기도로, 말씀으로, 책으로, 탈북동포 도움과 교회정착으로, 동북3성과 북한방북의 발걸음으로 쉬지 않고 복음의 씨를 심고 취약계층을 위한‘값없는 도움’의 물을 줌으로써 소리없이‘섬김의 예수사랑’을 몸소 실천해 왔습니다.

  저는 오늘 이 포럼의 기조연설을 사전에 정독한 바 있습니다. 특히 한반도의 평화와 북한선교를 위한 5대 접근법과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한국교회 목회의 4대 실천과제 제시는 주목할 만합니다. 자료집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그 내용은 통일선교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 교계, 학계 및 NGO의 전문사역자들과 평신도지도자 및 탈북자출신 목회자를 포함한 차세대 통일선교사인 신학원생들이 음미해 봐야 할 매우 유익한 전략지침과 실천방안을 예시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여러분이 생각하는 아이디어를 첨가해 보시기를 권면합니다.

  저는 분단민족교회의 사명은 한마디로‘화평(和平)의 사도’역할을 잘 감당하는 일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부연하면, 폭력과 전쟁의 방지, 용서와 화해, 북녘동포의 마음에 복음의 씨를 심고 사랑나눔의 물을 주는 성업(聖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고전3장) 화평과 복음통일의 열매 맺기는‘하나님의 일’입니다. 또 심는 이와 열매 따는 이는 다를 수 있습니다. 모두가 다 하나님이 허락하셔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세대는 수확은 다음세대에 넘기드라도 오늘 현재 교회의 안팎에서, 사회와 나라의 안팎에서 선교일꾼과 조직 간에 연합함으로 심고 물주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한국사회와 교계현실은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럽기 짝이 없는 모습입니다. 판문점선언, 평양선언, 싱가폴 선언에도 불구하고 아직 북핵문제 해결과 남북교류, 화해협력의 실질적 진전은 낙관불허입니다. 교회와 민간단체의 인도적 지원 조차도 닫힌 상태입니다. 안타깝게도 교회마져도 한목소리로 남북한 당국과 주변 4강을 향해 화해와 평화를 적극 권면하기 보다는 보수와 진보로 갈려 정죄와 갈등을 부풀리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편, 한성옥․ 김동진 탈북민 모자의 비극적 아사 사건 관련, 한국사회와 교회의 무관심과 냉대의 책임론 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전후사정이 어떻든 하나님 보시기에 한국교회는 무릎을 끓어야 할 사건입니다.‘따뜻한 남쪽나라’가 ‘냉냉한 비정의 땅’으로 비쳐지고 있음에 이제 한국교회는 “십자가교회로 오라!”는 표어의 웨침에 안주하지 말아야 합니다.“탈북동포의 구원을 위해 찾아 간다”는 행함을 선포,‘북한선교의 마중물’인 탈북민 사회로 들어가 계속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야 할 것입니다.

  세속정치와 환경이 어떠하든지 이제야말로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말씀대로‘선한 사마리아인’의 자세를 가다듬어야 할 것입니다. 안팎의 탈북동포와 북한내지동포들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다가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강도를 질타하는 데에만 열을 올리는‘일부 한국교회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향하여 주님은 이 시간에도“너희도 사마리아 사람 처럼 북녘동포의 참이웃이 되라!”고 경고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참으로 한국교회는 통일선교의 길에서 한결같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나침반으로 삼고 주의 발자취를 따라 나가야 할 것입니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범사에 그를 인정, 지도를 받으라”(#잠3:5-6)“좌우에 치우지지 말라”,“원수 갚는 일은 여호와께 맡기라”는 말씀들을 심각하게 반추하고 통일선교에 임해야 할 것입니다. 그 길이 북한교회 회복의 길이요, 곧 한국교회 회복의 길이 되리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국제포럼에는 한국과 미국교회의 기독인 최고전문가들과 탈북민을 대표할만한 유수한 정치학자 등이 심도 있는 발제와 지정토론을 하게 될 것입니다.
종합토론 시간은 길지 않지만, 한민족의 복음통일을 위해 헌신해 온 전문사역자와 평신도 지도자 및 젊은 신학도들의 참신한 의견을 기대합니다.
 
  아무쪼록 이 기독인 국제포럼이 한반도의 평화통일과 복음의 회복을 위한 한국교회의 발전적 전략과 실천방안이 논의되는 지혜나눔의 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이 귀중한 국제회합을 위하여 기도와 열정으로 준비한 고든 콘웰 신학대학원의 동북아평화연구원과 동북아한민족협의회의 임직원 여러분께 경의와 감사의 뜻을 표하는 바입니다.
  감사합니다.

기조연설




양병희 박사

동북아 한민족 협의회 대표회장
고든콘웰신학대학원 동북아 평화 연구원장


 한반도의 경제 환경이 커다란 변화를 맞고 있습니다. 북핵문제를 둘러싸고 긴장이 극에 달했던 상황이 급반전되어 역사적인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이 잇달아 개최되었습니다. 완전한 평화까지는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고 일말의 불안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만, 냉전의 벽을 넘어 평화의 길을 통해 이어지는 ‘한반도 번영의 시대’에 대한 기대 또한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한반도 최대의 현안인 북핵문제 해결은 반드시, 해내야 하는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북핵문제 해결의 변곡점이 될 것이라 예상했던 북미 정상회담이 싱가포르와 베트남 하노이에서 뚜렷한 성과 없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적대관계를 유지해 왔던 두 나라 정상의 만남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었지만, 비핵화 진전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많은 사람들이 실망을 한 것도 부정 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북미 정상회담은 북핵문제의 현실과 그 현실에 대한 우리 인식의 불일치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이제는 북한이 가진 핵무기를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바라봐야 할 시점입니다. 핵무기가 물리적· 정치공학적으로 얼마나 대단한 파괴력을 가진 무기인지 제대로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인식이 정리되지 않는 한 지난(至難) 할 수밖에 없는 비핵화 여정에서 우리는 계속 실망하고 혼란스러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북한의 비핵화는 남북관계의 끝이 아니며 우리가 추구하는 최종 목표도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중요한 목표는 동방의 예루살렘이라 불리던 북한 전역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다시 회복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앞에 놓여있는 현실적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발전시키고 평화와 통일의 길을 주도적으로 열어가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책무입니다.

  남북 화해와 평화·통일을 이루기 위해 이제는 한국교회가 남북 화해와 평화·통일의 시대를 적극적으로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통일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동·서독의 교회가 보여준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냉전으로 동독과 서독 체제의 이데올로기 때문에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영역이 이질화 되었지만 교회만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교감하며 통일을 준비했습니다. 민간분야에서도 동·서독 간의 가교역할도 감당했습니다.

  한반도의 상황은 더 심각합니다. 북한은 남한과 언어만 같을 뿐이지 문화와 생활습관, 세계관과 종교관까지 우리와 전혀 다른 상황입니다. 한민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선뜻 다가 설수 없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지만 우리는 그들 속으로 들어가는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남북화해를 위한 교류·협력과 궁극적으로 한반도 통일에 한국교회가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적절한 과제를 설정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구체적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북한 선교를 위한 접근법을 다음과 같이 제시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 역지사지(易地思之)입니다.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한국과 다른 북한의 특수한 상황을 인식하고 북한 선교를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입장에서만 북한에 접근한다면 선교는커녕 접근조차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둘째, 정치적 접근을 지양해야 합니다. 정치적인 이해득실을 떠나 진정한 통일을 위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등 각 분야에서 역사적인 관점으로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북한 선교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독자적으로 이루어질 때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습니다. 또한 보수와 진보로 구분되는 정치적인 접근을 지양하고 이념적 관점을 넘어 통일시대를 바라보는 역사적 관점이 필요합니다.

   셋째, 통일은 서둘러서도 안 되고 포기해서도 안 됩니다. 통일을 위해서는 민족의 동질성 회복을 위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북한이 쉽게 무너질 것이라는 기대보다 지속적이고 점진적인 교류를 확대해 나가면서 상호 간에 공감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넷째, 사람의 통일이 우선입니다. 부담스러워도 야곱과 에서가 만나야 해결되듯이 자주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북한을 방문하면서 자주 만날수록 북측의 관계자도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 선교는 당장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하겠다는 것보다 의약품이나 빵공장, 국수공장같이 북한 주민의 피부에 와 닿는 사회봉사의 장을 넓히는 것을 우선으로 하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다섯째, 빠른 통일이 아니라 바른 통일입니다. 속도 보다 방향이 중요합니다. 빠른 것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오히려 방향이 잘못되면 더 큰 불행이 올수도 있습니다. 문화적인 충격이나, 빈부격차에 의한 상대적인 소외감이라든지, 결핵이나 전염병의 대비라든지 단기간에 목표를 성취하려는 빠른 통일보다 남북의 올바른 인식을 공유할 수 있는 바른 통일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에 복음을 전하는 일은 치열한 영적전쟁(spiritual warfare)이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들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때문에 전략적인 준비가 필요합니다. ‘양병십년 용병일일 (養兵十年 用兵一日)’이란 말이 있습니다. 하루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10년을 준비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준비된 자를 쓰시지 의욕만 가진 자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한국교회는 적어도 다음의 4가지를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첫째, 탈북자들을 통일 역군으로 키우는 일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약 33,000명의 탈북자들이 있습니다. 이들도 포용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2,400만 북한주민을 품을 수 있겠습니까? 한국의 교회는 이들부터 품어야 합니다. 갑자기 다가올지도 모를 통일시대에 이들은 이미 북한과 남한의 자유민주주의를 경험한 선배로서 통일의 충격을 줄일 수 있는 큰 자원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둘째, NGO를 통한 남북교류 활성화입니다. 실제로 북한을 지원하는 NGO의 70%를 교회가 감당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인도적 대북지원의 창구로 종교기관을 자주 활용해왔습니다. 종교기관을 통한 인도적 대북지원은 상대적으로 정치적인 영향을 덜 받기 때문입니다. 북한 주민들의 피부에 와 닿는 것을 지원하여 문화적인 갈등을 완화 하는 사업, 특히 북한 사회에 기독교에 대한 호의적인 인식을 심어 주는 사업은 기독교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씨앗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셋째, 통일헌금을 준비하는 일입니다. 점진적인 통일을 원하지만 우리의 소망과 달리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통일이 다가온다면 경제·사회적으로 부담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차원과는 별도로 교회차원의 통일헌금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는 통일을 기도하고 말하면서 실제로 큰 노력을 기울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북한선교헌금을 준비하며 크리스천들의 인식 속에 통일을 준비하는 마음이 각인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넷째, 통일기도회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린 것은 기도였습니다. 실제로 1981년 동독 라이프치히에서 시작된 월요기도모임이 9년간 이어지면서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지고 통일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7명의 성도들에 의해 시작되었으나, 이후 기도회에 참여하는 인파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남북통일도 하나님께서 휴전선을 무너트려 주셔야 이루어 질 수 있을 것입니다. 통일준비를 위해 해야 할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기도하는일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는 정말 남북화해와 평화 그리고 한반도의 통일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한반도의 통일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실질적으로 대비할 수 있는 역량을 축적하는 것이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입니다. 갑자기 다가올지 모를 통일을 한국교회는 지금부터 준비해야 합니다. 기독교가 통일시대를 이끌어 가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작은 것부터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교회에서 신학생이 많이 배출되는 현상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깨닫고 있습니다. 통일시대를 감당하는 일꾼으로 쓰시기 위한 하나님의 준비라고 생각합니다. 남북관계에서 기독교의 사랑과 지원은 민족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과 통일시대를 위한 준비입니다.

  남한과 북한의 현실을 모두 경험하고 있는 탈북자들을 한국교회가 한 사람씩 결연을 맺고, 정착을 도울 수 있다면 이들은 통일과 북한선교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이 될 것입니다. 평화로운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 남북관계의 ‘동반자’, ‘조정자’, ‘협력자’의 역할을 한국교회가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통일이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올 수 있다’고 예측하는 전문가들도 있습니다. 기다리고 있을 것이 아니라 준비해야 합니다. 북한 주민들은 종교적으로 마치 백지와 같아서 통일이 된 뒤에는 누가 먼저 복음을 전하느냐에 따라 종교의 영향력이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올림픽에서 100m달리기 선수가 단 몇 초를 뛰기 위해서 4년을 피눈물 나게 준비하듯이, 우리도 준비해야 합니다.

  평화로운 통일을 맞이하기 위해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발전시키고 평화와 복음의 통일의 길을 주도적으로 열어가는 것은 우리의 과제입니다. 미국 복음주의 명문인 고든콘웰신학대학원 동북아평화연구원과 동북아한민족협의회 공동으로 ‘한반도 평화통일과 기독교의 역할’을 주제로 여러분들과 이 뜻 깊은 자리를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이 학술포럼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복음적 비전을 제시하는 초석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닐리 개스톤 코든 콘웰 신학대학원 부총장님과 이정익 이사장님 그리고 양영식 전 통일부 차관님 허문영 박사님, 안찬일 박사님, 그리고 고세진 총장님과 내·외빈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모두의 평안과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늘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한반도 정세와 통일 전후
한국교회의 역할
 




허문영 박사
평화한국대표, 통일연구원 석좌 연구위원

Ⅰ. 최근 한반도정세변화 의미 : 하나님 일하심 

   2019년은 3.1운동 100주년이자,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다. 오늘 우리가 사용하는 국가상징 가운데 국호 대한민국, 국가 애국가, 국기 태극기, 국화 무궁화는 모두 상해임시정부에서 제정한 것이다. 당시 상해임정에는 기독교인들이 많이 활동했다. 대통령 이승만, 국무총리 이동휘, 내무총판 안창호, 경무국장 김구, 여운형 등 종교가 밝혀진 인물들 가운데 62% 정도가 기독교인으로 평가된다.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에 한반도는 해빙기에 들어섰다. 꽁꽁 얼어 붙었던 한반도에 봄이 와서 얼음이 녹기 시작했다. 2018년 체제분단 70년이 되던 해에 열린 평창올림픽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북한의 끊임없는 핵무기개발로 전쟁의 소문이 꼬리를 물던 한반도였다. 테러가 우려되던 평창올림픽이었다. 대규모 북한 예술단·응원단·선수단의 전격 참가와 여자하키 단일팀 구성으로 평화올림픽으로 승화되었다. 4월 27일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은 ‘더 이상 전쟁이 없는 새로운 평화시대’를 선언하였다.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서는 ‘완전한 비핵화를 통한 핵없는 한반도’에 합의하여 북핵해결의 실마리를 만들었다. 지난 25년 동안 풀리지 않던 북핵문제의 근본적 해결이, 73년 묵은 민족의 숙원 평화통일의 길이 모색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심을 기억해야 한다. 물론 문재인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과 탁월한 외교력, 김정은 위원장의 ‘강성국가 건설전략’과 용기 있는 결단, 트럼프 대통령의 ‘최대 압박과 최대 관여’정책과 추진력이 맞물려 북핵문제를 비롯한 한반도문제 해결의 단초가 마련되고 있다. 그리고 시진핑 주석의 대북압박과 보장도 기여했다. 그러나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역사의 1차 동인은 하나님이시다. 인간은 2차 동인이다. 인간의 생사화복(삼상2:6)과 국가의 흥망성쇠(렘18:6-10)를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인간이 계획할 지라도, 그 일을 이루시게 하시는 분(잠16:9, 렘33:2-3)은 하나님이시다. 사단법인 평화한국은 복음통일과 세계선교를 위해 13년째 ‘세이레평화기도회’를 전개해오고 있다. 2017년 나라안팎으로 어두운 상황에서 위기와 전쟁설만 난무하며 한반도의 미래가 내다보이지 않을 때, 주님께서는 2018년 주제성구로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렘33:2-3)를 주셨다. 2017년 5월 8일 평화한국 북한선교사이신 김학송 선교사님이 평양과기대에서 농업사역을 섬기다가 억류된 상황이었다. 평화한국은 300여명 한끼릴레이금식기도자들과 50여명 일일릴레이금식기도자들과 함께 김 선교사님을 비롯 9명 억류자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했다. 기도한 지 7일 만에 웜비어 형제가 풀려났다. 3달 뒤에는 임현수 목사님이 석방되었다. 2018년 5월 10일 1년 만에 김학송 선교사님이 먼저 구금되어있던 김동철, 김상덕 선교사님과 함께 풀려났다. 성도의 끈질긴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셨다. 아직도 한국국적 선교사이신 김정욱, 김국기, 최춘길 선교사님과 중국국적 장문석 집사님은 억류되어 있다. 향후 남북정상회담 추진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선교사님들을 모시고 올 수 있도록 계속 기도해야한다.

  들뜨면 안 된다. 이제 평화의 첫걸음을 내딛은 것에 불과하다. 지난 74년 동안 유지되어 온 북한의 공산화통일전략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았다. 북녘동포를 통치하는 ‘통제와 세뇌’의 체제유지방식도 그대로다. 우리 사회 또한 자유로 비록 성공은 했으나, 행복하지는 않다. 남북한 모두 복음으로 바뀌어야 한다. 복음통일의 대장정 첫발로 만들어야 한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인권개선’과 ‘자유화’와 우리 사회의 ‘성결·경건·정직’을 통한 ‘정의와 사랑’ 구현으로의 길은 험난할 게다. 게다가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이 아니라 어둠의 세상주관자들과 하늘의 악한 영들을 상대함이다. 악한 영들은 언제든지 틈만 나면 방해하고자 할 것이다.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을 차분히 계속해야 한다.

  이제 통일대한민국도 기독교인들이 중심에 서서 사랑과 희생으로 섬길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 글에서는 기독교적 통일대안과 교회의 실천방향을 간략히 제시해 보고자 한다.



Ⅱ. 한반도 통일문제 어떻게 볼 것인가?

1. 한반도 분단구조 특징 : 3중분단

 20세기 우리 민족을 질곡에 빠뜨리고, 21세기 초입에서도 여전히 속박하고 있는 한반도 분단구조는 과연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한반도 분단구조는 3단계를 거쳐 중첩적으로 형성되었다.

가. 국토 분단 : 적대적 이중삼각관계 형성

1945년 8월 15일 북위 38도선을 중심으로 미군과 소련군이 각각 점령함으로써 제 1단계인 ‘국토 분단’이 진행되었다. 이후 국제 차원에서 볼 때, 미·소의 이데올로기적·군사적 대결과 한국전쟁으로 인해 자유진영의 미국·일본·한국으로 구성되는 남방삼각관계와 공산진영의 소련·중국·북한으로 구성되는 북방삼각관계가 구성되었다. 그 결과 한반도에는 진영적 대결인 이중삼각관계의 냉전적 분단구조가 형성된 것으로 특징화된다. 따라서 이 수준에서의 분단구조 극복은 양자 동맹관계의 진영적 대결로부터 양자 정상관계 및 다자간 지역안보 협력체제로의 변환을 의미한다. 한국은 1990년 구소련과 1992년 중국과 수교하였기 때문에, 이제는 북한의 대미·일 관계정상화와 동맹관계(한·미 및 북·중/러)의 재조정이 그 핵심적 내용이 될 것이다.

나. 체제 분단 : 정전체제 수립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수립으로 제 2단계인 ‘체제(주권/정부)분단’ 진행되었다. 따라서 남북한관계 차원에서 볼 때, 적대적 정부의 수립과 한국전쟁 그리고 수많은 도발과 응징으로 인해 휴전상태 또는 정전체제와 군비경쟁으로 규정되는 군사적 대결의 냉전관계가 구축된 것으로 특징화된다. 따라서 이 수준에서의 분단구조 극복은 정치·군사적 화해·협력을 통해 흡수통일 또는 무력·적화통일 추구적 관계를 평화공존과 합의통일 추구적 관계로 전환하는 것이다. 한편 남과 북은 1972년 7·4공동성명,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2000년 남북공동선언의 합의를 이뤄낸 바 있기 때문에, 이의 실천이 체제 분단 극복의 주요 의제로 설정할 수 있겠다.

다. 마음 분단 : ‘적’과 ‘원쑤’ 대결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에 따른 3년여의 한국전쟁으로 동족상잔을 경험함으로써 제 3단계인 ‘마음(민족/심정)분단’이 최종적으로 진행되었다. 따라서 국내 차원에서 볼 때, 남한의 국가보안법과 반공교육 그리고 북한의 형법과 사상교양으로 상징되는 이데올로기적 대결의 냉전제도가 강화된 것으로 특징화된다. 따라서 이 수준에서의 분단구조 극복은 남북한 각각 상호 수용적 제도 개발과 평화교육을 통해 다원적 동질성 회복을 모색하는 것이다. 즉 남북한 내부에서 냉전적 법·제도의 개폐 추진과 평화교육 실시, 남북이산가족의 고통 해소 등을 의미한다.

 따라서 한반도 분단구조는 국제 정치적 권력관계가 주도하고, 민족적 권력투쟁과 동족상잔으로 심리적 적대감이 축적된 복합형으로서, 남북한 각각의 국내정치적 요청에 의해 고착화된 것으로 특징화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한반도 분단구조 극복은 한반도에서 국토분단, 체제분단, 마음분단을 해결하는 것이 된다. 달리 말하자면, 한반도 평화와 남북한 협력을 제도화하여 평화통일의 초석을 닦는 것이다.


2. 한반도 분단구조 의미 : 5차원 문제

 우리분단은 5차원적 의미가 있다. 먼저 세계적 차원에서는 유일초강국 미국대 도전국가 중국의 패권대결선이 된다. 동아시아 지역적 차원에서는 해야세력인 미국,일본 대 대륙세력이 중국, 러시아의 지정학적 대치선의 의미가 있다. 한반도 민족적 차원에서 남한(대한민국)과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민족분단선이다, 남한 내부차원에서는 다양한 세력들의 정권쟁탈선이 된다. 최근 이 문제는 한국사회를 사분오열, 지리멸렬 시키는 심각한 의제가 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적 차원에서는 하나님나라를 믿는 영역 대 불신하는 영역의 영적 전쟁선이라 할 수 있다. 5차원적 복합해법이 수립, 추진될 때, 우리민족은 물론 한반도분단문제와 직․간으로 연결된 열방이 모두 함께 살 수 있게 된다.


3. 한반도 분단구조 동요 : 2번의 충격

이같은 한반도 분단구조를 변화시키는 두 번의 충격적 사건이 있었다. 첫 번째는 1988년 대한민국 서울에서 개최된 88서울올림픽이다. 1976년 몬트리얼올림픽이후 12년 만에 동서 양진영이 모두 참석하여 진행된 온전한 올림픽이었다. 북한과 쿠바만 참석하지 않은 전세계적 축제였다.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서울에서 35년 만에 세계인이 주목하는 가운데 꿈의 제전이 열린 것이다. 잿더미에서 장미꽃이 핀 것을 본 세계인들이 보았다. 공산진영에는 충격이 되었을 터이다. 이후 1989년 동독 베를린장벽 붕괴를 시작으로 동구라파 사회주의진영이 붕괴되기 시작했고, 1990년 10월 3일 독일이 통일되었으며, 1991년 12월 25일 소련이 해체되었다. 그 결과 세계적 차원에서는 냉전질서가 와해되었다.

두 번째는 2018년 대한민국 평창에서 진행된 평창동계올림픽이다. 서울올핌픽이후 30년 만에 대한민국에서 다시 개최되었다. 이번에는 북한도 참석했다. 한민족이 공동주최한 올림픽이 되었다. 테러와 전쟁의 소문이 사라졌다. 이후 4월 남북정상회담과 6월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되면서 한반도와 동아시아에 새로운 질서가 모색되기 시작했다. 특히 북미정상회담은 북한체제가 들어선 이후 73년 만에 최초로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동아시아 질서에 충격을 주고 있다.

  정리해 볼 때, 한반도를 둘러싼 얼음장 즉 한반도냉전구조는 2가지 차원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먼저 민족적 차원에서는 1945년 국토 분단, 1948년 체제 분단, 1950년 북한의 남침에 따른 동족상잔의 민족 분단으로 한반도의 얼음장이 만들어졌다. 국제적 차원에서는 세계적으로 미소 냉전이 심화되면서, 동아시아에 북한소련중국의 3각동맹체제가 만들어지고, 이에 대항하여 한국미국일본의 3각협력체제가 만들어져 2중 3각대립구도의 동아시아 얼음장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1991년 소련이 붕괴된 이후에는 그 자리에 러시아가 들어가 지정학적 2중 3각대립구도가 지속되어 오고 있었다. 그런데 평창올림픽과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북미정상회담으로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개선되면서 한반도 얼음장과 동아시아 얼음장이 함께 녹기 시작한 것이다. 봄이 오니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이때가 위험하다는 것이다. 얼음위에 있던 대한민국이 잘못하면 물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살기 위해서는 수영을 할 줄 알든지, 배를 준비해야 한다. 배를 준비한다는 것은 한미동맹을 유지․강화함을 의미한다. 수영을 할 줄 안다는 것은 자기를 지킬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를 지킬 국방력을 튼튼히 구축함을, 나아가 정치력․경제력․사회통합력을 잘 구비함을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Ⅲ. 새로운 통일방향 : 복음통일 과 영성대국


지금은 우리 민족의 숙원인 평화통일을 위해 통일 3.0 패러다임을 진지하게 모색해야 할 때다. 분단 70년 동안 우리는 분단질서를 극복하고 통일국가를 수립하려는 다각적 방법을 정말 다양한 노력으로 추구해왔다. 그러나 이 같은 우리의 통일노력은 크게 2가지 통일패러다임 통일패러다임이란 어떤 통일국가를 이룩할 것이며, 어떤 가치를 추구할 것이며, 어떻게 그 나라를 이뤄갈 것인가에 대한 총체적 관점이라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한반도 통일과 관련된 통일미래상, 통일방안, 통일전략을 통일패러다임의 핵심구성요인으로 본다. 허문영, 󰡔신통일대계 구현을 위한 구조분석󰡕 (서울:통일연구원, 2014) p.12

 단계로 대별해 볼 수 있다.

  첫째는 통일 1.0 패러다임 전쟁통일론이다. 1950~60년대 냉전기 적대적 대결통일론이다. 1950년대 한국전쟁 경험을 통해 우리는 전쟁에 의한 통일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비싼 대가를 치르는 것인지 처절히 경험했다. 전쟁기간 남한의 사상자는 206만명(사망 86만, 부상 120만), 북한은 300만명(사망 120만, 부상 180만)으로 민족사상자는 500만명을 넘어섰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 결과도 통일이 아닌 분단고착화에 불과한 것임을 깨달았다. 한반도통일문제가 단순히 남북한 민족만의 문제가 아니라 주변4국의 국가이익이 결부되어 있는 국제적 문제임도 깨닫게 되었다.

  둘째는 통일 2.0 패러다임 대화통일론이다. 1970년대 긴장완화기부터 시작되어 1990년대 탈냉전기를 거쳐 2018년 현재까지의 유화적 대화통일론이다. 남북대화를 통해 긴장완화까지는 갈 수 있었으나, 북한의 핵실험과 대량살상무기개발이라는 결과에 봉착하고 말았다. 1990년대부터 치열하게 전개되어 온 햇볕론(온건론)과 바람론(강경론)은 그 주장의 강열함에도 불구하고 모두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한계를 보여주었다. 두 논의가 극심한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발상에 있어서는 한 틀 속에 있다. 전자는 한국정부가 따뜻하게 대해주면 북한이 전향적으로 나올 것이며 합의통일에 도달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후자는 강경하게 밀어붙이면 북한이 밀려서 항복하고 나올 것이고, 안 나오면 붕괴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두 논의는 모두 한국정부의 대북정책이 북한의 정책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보는 점에 있어서는 똑같은 발상을 갖고 있다. 한국정부의 대북정책이 독립변인이고, 북한의 정책변화가 종속변인이라고 보는 점에 있어서는 똑같은 틀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정책변화는 우리 정책에만 따르는 것이 아니다.

  이제 정․반․합 완성단계인 통일 3.0 패러다임 복음통일론을 모색․수립해서 실천해야 할 때다. 창의적 균형통일론으로서 복음통일론이 되어야 한다. 기본방향을 다음과 같이 제시해 본다.


1. 복음통일 기본방향

가. 창의적으로 : 한민족형 복음통일 

  먼저 통일을 이룬 나라들로부터 배워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후 동서 냉전체제 하에서 분단․대립해 오던 나라는 모두 5 나라였다. 그 중 3나라는 통일을 실현했다. 베트남은 1975년 북베트남에 의해 ‘무력에 의한 흡수통일’을 이뤄냈다. 그러나 전쟁에 의한 공산주의 무력통일은 국토의 황폐화, 생산시설의 파괴, 막대한 인명피해와 적대감을 증폭한 채 부자유와 빈곤의 통일후유증을 심각하게 초래했다. 독일은 1990년 서독을 중심으로 ‘합의에 의한 편입통일’을 이뤘다. 동서독 평화통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2가지다. 첫째는 종주국 소련이 붕괴의 길을 걷고 있음으로써 동독에 대한 지원과 통제를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둘째는 동독주민이 서독체제로 들어가기를 원했다는 점이다. 한반도의 경우, 북한의 배후국인 중국은 몰락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G-2로 도약하고 있고, 북한주민들은 아직까지 남한체제로 들어오기를 본격적으로 원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독일식 통일모델을 한반도에 기계적으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분단기간 서독은 통일을 외치지 않았지만, ‘제2인자 외교 (No. 2 Diplomacy)로 우호적 통일환경과 지속적 교류협력으로 동독주민의 ‘친서독화’를 이뤄내 평화통일을 달성했다. 그러나 통일 이후 통합과정은 우리로 하여금 반성케 한다. 정치통합은 1년 내 잘 이뤄졌고, 경제통합도 10여 년에 걸쳐 성과적으로 이뤄졌으나, 사회통합은 26년이 지났음에도 향후 30년이 더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예멘은 ‘합의통일(1989) 후 내전과 재통일(1994)’ 방식으로 통일을 이뤄냈다. 그러나 통일 이후 통합과정에서 불만을 품은 세력들에 의해 정치사회적 혼란과 더불어 내전에 돌입했다. 우리는 분단국 통일사례 검토를 통해 통일준비를 위한 ‘후발주자’ 이점을 누릴 수 있다. 타산지석일 뿐이다. 우리가 반드시 따라 가아야 할 모범사례는 아니다. 

  그러면 우리 통일방식은 어떻게 되어야 할까? 우리민족의 통일은 무력통일이 아닌 평화통일로, 일방적 편입통일이 아난 쌍방적 합의통일로, 지도부만에 의한 통일이 아닌 국민적 통일로 되어야 함을 배울 수 있다. 그리고 합의통일에 있어서도 그 수순은 정치→ 경제→ 사회․문화 통일이 아닌 문화․사회→ 경제→ 정치 통일 순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온 민족구성원이 참여할 수 있고, 분단 70여 년 이상 남북이 각각 축적해온 제 분야의 역사적 유산들을 융합·승화·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先 국가통일, 後 국민통합 방식이 아니라 先 국민통합(Integration), 後 국가통일(Unification) 방식을 적극 모색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우리 기독인에게 있어서는 2,500만 북녘동포들의 구원문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 우선적으로 북한지도부가 복음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아니면 너무 많은 피를 흘릴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남북통일의 과정에서 복음의 교류가 제일 먼저 있어야 한다. 2,500만 북한동포의 구원의 문제와 통일한국의 사회적 건강성 문제를 올바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북한실정과 현재의 남북관계를 볼 때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해야 한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위대한 인물은 위대한 일을 이뤄내지만, 하나님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신다.

나. 변혁적으로 : 성경적 영성대국

  변혁적 통일정책을 수립 추진해야 한다. 동서독대결에서 서독중심의 통일을 이뤄낸 브란트식 대북정책과 미소냉전대결에서 소련의 붕괴를 이끌어낸 레이건식 대북정책의 한계를 모두 극복한 통일정책을 모색해야 한다. 햇볕정책은 전자를, 강경정책은 후자를 모방한 정책이다. 모두 한계를 노출했다. 새로운 통일(대북)정책방향은 협력과 압박을 통한 변화가 되어야 한다. 

  목표로는 영성대국, 평화대국을 지향해보자. 인구대국 중국, 영토대국 러시아, 경제대국 일본, 유일초대국 미국을 넘어 통일대한민국이 靈性大國(Great Spiritual State)이 되도록 해보자. 平和大國을 지향하되 군사적 힘에 의한 평화를 추구하는 팍스코리아나가 아니라 영성적 섬김에 의한 평화를 추구하는 샬롬코리아나(Shalom Koreana)를 만들어가자. 

  전략에 있어서는 북한 변화의 모든 상황에 대한 대비해야 한다. 그러나 희망적 사고나 극단적 증오에 기초한 전략은 자제해야 한다. 예컨대 북한조기붕괴설이나 ‘김정은참수부대’의 공개적 창설 등은 현실적이지도 않고, 평화통일에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북한의 지속적인 핵무기 개발에 대해서는 주변국의 핵심국익(vital interest)을 고려한 협조 하에 단호한 정책을 계속 추구해야 한다. 그리고 북한정세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기초로 우리의 통일역량을 제고하며 상황반응적 대책이 아닌 상황주도적 정책을 수립해서 변혁(transforming)적 통일을 이뤄가야 한다. 남한체제 확산론이나 남북한체제 수렴론을 넘어, 정의·사랑·평화중심의 남북한변혁론적 접근을 적극 모색하자. 우리 기독인들은 상대방 북한을 변화시키려고 애쓰기보다는, 우리 교회와 사회에서부터 정의·사랑·평화의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도록 노력하자. 그러면 하나님께서 선물로 복음통일을 내려주실 것이다. 문제는 북한이 아니다. 우리가 통일을 받을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점이다.

  수단에 있어서는 관여를 병행하자. 제재와 압박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출구를 열어줘야 한다. 북한의 반응을 얻어내며, 주변 4국과도 협조를 이뤄가야 피흘림 없는 복음통일이 가능하다.

다. 미래적으로 : 상생적 세계평화

  미래지향적 시각으로 접근하자. 한반도를 둘러싼 대륙과 해양 세력의 대결구도는 여전하다. 아니 오히려 미국의 21세기 세계패권 유지전략과 중국의 21세기 소강사회건설을 위한 일대일로전략의 충돌, 그리고 일본의 정상국가를 표방한 군사력강화전략과 러시아의 신동방정책에 기초한 패권회복전략으로 인해 마찰이 더욱 심해질 가능성도 높다. 그러나 동아시아는 전쟁으로 퇴락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기독공동체에 의해 평화와 공동번영으로 발전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자주국방에로의 노력과 굳건한 한미동맹은 지속해야 한다. 격동하는 동아시아 정세 속에 평화통일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튼튼한 안보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배치는 주도면밀하게 이행해야 한다. 물론 중국 등 이웃나라 우려 해소와 국민적 합의가 부족한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점은 매우 아쉬운 부분이다. 그러나 북한의 계속되는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발사 등 대량살상무기개발에 대한 방어용이라는 점과 한미정부합의사항이라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안보문제라는 점에서 포기해서는 안 된다. 

  반면에 한일군사정보협정(GSOMIA)은 좀 더 신중히 검토되어야 한다. 지나친 한미일 군사협력강화는 북중러 북방삼각관계 강화를 다시 냉전시대처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우리민족의 분단고착화로 귀결될 수 있고, 우리국민의 70년 숙제인 평화통일의 노력에 역행할 수 있다. 향후 우리의 통일(대외)정책방향은 한미일 삼각협력체계의 퇴행적 공고화로 갈 것이 아니다. 평화통일과 동아시아평화를 위해 세계적 차원의 한미중 삼각협력정책과 동아시아지역적 차원의 한중일 삼각협력정책을 통해 전향적 구체화로 나가야한다. 2018년 한국의 평창동계올림픽을 넘어 2020년 일본의 동경하계올림픽, 2022년 중국의 베이징동계올림픽을 모두 성공적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하여 동아시아평화를 공고히 해보자. 

  이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보자.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접점에서 대상적 존재에서 벗어나 주체적 존재로 비상해보자. 지정학적 대결상태 가운데 강대국의 희생양으로 더 이상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지중해를 중심으로 유럽과 아프리카를 이끌었던 ‘로마제국’처럼 “해륙국가”로 발전해보자. 한반도문제를 해결할 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 나아가 5대양 6대주 인류의 공동발전에 이바지하려는 의지를 갖고 통일문제를 진취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어야 한다. 

  G-3 시대를 준비하자. G-8과 G-5, G-0를 넘어서야 한다. 마초 정상들이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것과 미국과 중국이 패권전쟁을 벌이는 것을 방관할 것이 아니다. 복음통일로 영성대국을 이뤄 미국·중국과 함께 세계 평화와 세계 복음화를 위해 노력하는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통일대한민국은 OECD 국가 중 4위 인구인 8000만 독일보다도 더 큰 나라가 된다. 이제 더 이상절대폭풍 도래와 이에 대비 못한 국가지도부만 비난할 것이 아니다. 통일비용만 우려하고, 분단을 지속하려 할 때가 아니다. 미국과 중국이 패권전쟁을 벌이는 것을 방관할 것이 아니다. 통일한국을 이뤄 미국·중국과 함께 세계 평화와 복음화를 위해 노력해야 할 때다.


2. 복음통일 실천전략 : 평화 5단계

  이제 우리 대한민국은 평화와 통일을 위한 국가대전략을 수립해서 추진해야 한다. 일반국가목표인 생존과 안보(Survival and Security), 번영(Prosperity), 위신(Prestige) 모두 잘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 특수국가목표인 통일(Unification)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평창올림픽을 평화올림픽, 문화올림픽, 영성올림픽으로 발전시켜 향후 15년 놀라운 복음통일역사의 시발점으로 만들어야 한다. 사회경제적 양극화현상을 극복하고, 주변국가와의 경쟁에서도 밀리지 않는 가운데 통일을 맞이할 수 있는 새로운 헌법체제를 준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노력들이 시작되기를 소망한다.

 가. 평화지키기 (Peace Keeping)

  튼튼한 안보를 토대로 평화를 지켜야 한다. 북한의 핵공격 및 무력도발을 막기 위한 한국형 3축타격체제(선제공격Kill Chain, 한국형미사일방어체제KAMD, 한국형대량응징보복KMPR)를 조기구축하여 독자적 대북억지력을 확보하도록 한다. 방산비리 제거를 통한 국방개혁과 군사력 강화를 동시에 추진하여 튼튼한 자주적 안보태세를 구축한다. 한미동맹 유지 강화를 통해 북한의 핵무기에 대한 공포의 균형을 이루어 내도록 한다. 균형십자외교와 이중궤도정책(Two Track Policy)으로 주변4국의 우호적 지지를 끌어내도록 한다. 공평과 정의에 기초한 통합사회 구현으로 국민들이 조국에 대한 자부심과 충성심을 갖도록 해 자발적 안보의식을 체화할 수 있도록 돕는다.

 나. 평화만들기 (Peace Making)

  한국형 통일대전략을 수립해서 평화와 통일을 만들어가야 한다. 절대폭풍을 극복하고 한반도 평화통일 및 동아시아 평화번영을 위해 대북정책과 통일정책을 넘어 국가대전략을 준비․실천한다. 북핵 개발에 대해서는 주변국 핵심국익을 고려하면서, 단호한 압박정책을 계속 추구한다. 그리고 희망적 사고에 근거한 상황대응적 대책이 아니라, 객관적인 북한정세 평가를 기초로 상황주도적 정책을 수립해서 변혁(transforming)적 통일을 이뤄간다. 한반도통일문제 구조와 관련해서는 미중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미중관계가 좋으면, 북한을 압박해서 변화시킬 수 있다. 미중관계가 나쁘면, 북한은 중국의 보호하에 자기 정책을 지속할 것이다. 최악의 경우, 미국이 북한을 예방 또는 선제공격할 수도 있다. 우리로서는 한미중 삼각우호협력관계가 이뤄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다. 평화키우기 (Peace Building)

  사회정의수립과 국민화합으로 품격 있는 통일대한민국이 될 수 있도록 준비하자. 끝없는 경쟁 가운데 실패한 인생, 승자독식으로 좌절한 빈곤계층, 물질만능주의와 부정부패로 물들어 병든 사회구조, 만성적인 정쟁과 극단적 이념갈등으로 지도력을 상실한 정치권, 세계에서 가장 심화된 세대갈등으로 단절된 기성세대와 다음세대. 이 모든 과제를 안고 있는 대한민국을 쇄신하지 못하면 모든 기회의 창은 다시 닫힐 수 있다.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고, 온전국력(Whole Power)을 구비하게 될 때, 평화대한민국은 평화통일과 평화세계를 선도해 나갈 수 있다.

라. 평화나누기 (Peace Sharing)

 통일대한민국이 만들고, 누리는 평화를 전세계 모든 국가들과 함께 나눌 수 있도록 하자. 2018년 체제분단 70년에 열린 평창올림픽 개최를 북한과 함께 성공적으로 치러내고, 남북 화해협력의 길을 재개했음을 감사하자. 2020년 민족분단 70년에는 남북연합의 길을 열어보자. 2023년 휴전 70년에는 한반도평화협정 체결을 적극 모색해보자. 동시에 동아시아 평화조성을 위해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치러내고, 2020년 일본 동경하계올림픽과 2022년 중국 북경동계올림픽의 성공적 진행을 통해 동아시아 평화를 한일중이 함께 만들어 가보자. 확정된 2024년 파리하계올림픽, 2028년 LA하계올림픽을 거쳐 2032년 평양하계올림픽을 통일대한민국에서 개최할 수 있도록 기도하자. 아무튼 평창올림픽은 향후 15년 한반도 및 세계질서를 평화적으로 바꾸는 시초가 될 것이다.

마. 평화섬기기 (Peace Serving)

  우리 민족에게 주어진 인류사적 사명을 생각하자. 섬김에 의한 평화 Shalom Coreana를 이뤄가야 한다. 힘에 의한 평화 Pax Koreana를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통일대한민국은 단순히 우리 민족의 부귀영화만을 추구하는 나라가 아니다. 열방을 복음으로 섬기는 나라다. 힘에 의한 정복으로 누른 평화를 추구하는 나라가 아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에 의한 섬김으로 평화를 이뤄가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십자군정신으로 만연한 나라가 아니라 십자가정신으로 충만한 나라다. 세상의 모든 열방과 연약한 백성들에게 예수사랑을 전하는 나라가 되는 것이다. 특별히 경제적으로 연약한 나라들, 사회발전정도가 낮은 나라들, 전쟁으로 어려움을 겪는 나라들, 선진국이라 하나 방향을 잃은 나라들에게 복음으로 섬기는 통일대한민국이 되는 것이다.



Ⅲ. 한국교회 실천과제

  지난 시기 한국교회는 민족의 고난과 영광을 함께 해왔다. 1883년 만주를 무대로 활동하던 권서인(서상륜, 서경조 등)들과 1885년 선교사(언더우드, 아펜젤러 등)에 의해 들어온 복음으로 한국교회는 세워졌다. 이후 대한제국 몰락과정에서 민족근대화에 주력했고, 일제하에서는 독립운동을, 해방 이후에는 대한민국 건국과 산업화, 민주화 등 매 시기마다 시대적 소명을 감당하며 영혼구원과 하나님 나라 운동에 진력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민족과 함께 하던 한국교회가 방향을 상실한 모습이다. 산업화와 민주화 그리고 복음화의 열매로 생긴 물질과 권리와 부흥을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위해 사용하지 못했다. 번영신학과 성공신앙으로 우리의 욕심과 죄성을 정당화하는 양상이었다. 고난 받는 북녘동포 구원과 동아시아 평화 그리고 세계선교를 위해 복음에 기초해서 하나님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데, 이념·지역·계층·세대 갈등으로 사분오열된 국내정치지형에 함몰되어 선지자적 목소리와 제사장적 섬김을 놓치고 말았다.


1. 기본방향

  첫째, 균형과 초월을 회복하자.(수 1:7-9)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하나님 말씀에 굳게 서자. 지금 우리 사회는 사분오열을 넘어 지리멸렬되어 있다. 좌·우 이념 대립 뿐만 아니라 영·호남 지역 갈등, 1:99의 계층 갈등, 세대 갈등, 남녀 갈등 등으로 갈라져 있다. 이같이 편향되고, 갈라진 모습은 교계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한국교회를 분열시키고, 싸우게 만드는 ‘북한절대지지론’의 극좌와 ‘북한정복론’의 극우의 극단적 인사들은 회개해야 한다.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적 입장을 강화하기 위해 성경을 인용하고, 기도를 무기화하는 데서 돌이켜야 한다. 분열된 사회를 치유하고 화합하는 길은 교회가 먼저 서로 용서하고, 포용하고, 배려하는 자세를 회복하고, 말씀으로 하나될 때, 시작될 것이다. 나아가 하나님 말씀에 기초해 좌·우로 치우치지 않은 균형정책을 구사해서 국민화합을 토대로 남북협력과 국제사회의 지지를 끌어내 평화와 통일로 가는 초석을 놓을 수 있어야 한다. 한반도 통일문제가 오랜 세월 동안 만들어진 구조적 문제임을 인식하고, 극우 전체주의(나치즘, 파시즘, 군국주의 등)나 극좌 공산주의(Marx-Leninism)적 양 극단주의는 도움이 안 됨을 분명히 해야 한다. 통일문제를 좌우 대립의 1차원적 관점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과거·현재·미래의 전후 시간적 맥락과 천·지·인의 상하 관계적 맥락을 함께 살펴보는 입체적 관점을 확립해 통일문제를 해결하도록 하자.

  둘째, 사랑을 실천하자.(요일4:21) 북한에 대한 우리 국민의 자세가 바뀌어져야 한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북한을 조롱,멸시,타도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런 자세는 화해와 통일 그리고 통일한국의 국민통합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남북 대결론적 자세에서 상생론적 자세로 전환해야 한다. 용서하되, 잊지는 말자.(forgive but don't forget)(사 43:18, 46:9) 그리고 사랑하자. 한국전쟁과 수많은 남북 갈등의 역사에 따른 원한과 미움 그리고 증오에 더 이상 집착하지 말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일들이 일어났던 원인과 배경에 대해서는 늘 유념하여, 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자. 한국전쟁과 수많은 무력도발을 일으키고, 무고한 사람들을 납치하고, 관광객을 저격하고,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을 자행한 북한 당국을 생각하면 결코 용서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공산주의체제에서 신음하고 있는 2300만 북녘동포를 생각하면 구원과 인간 존엄성문제로 잊을 수가 없다. ‘자유’를 중심으로 국가발전을 이룩해온 대한민국과 ‘평등’을 중심으로 체제발전을 도모해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하나 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러나 ‘박애’ 곧 ‘사랑’안에서는 함께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사랑으로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우리가 아직 원수되었을 때, 우리에게 친히 찾아오셔서 우리 죄를 대신 해결해 주시고 생명의 길로 인도하신 주님을 우리도 북녘동포들에게 예수님의 방식으로 전해 주도록 노력해야 한다.(요일4:11)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보지 못하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요일4:20)

  셋째, 연합을 이뤄가자.(시133:1) 21세기는 네트워크(Network) 시대라고도 일컬어진다. 북한선교와 복음통일을 이뤄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창구는 크게 5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조선그리스도교연맹」과의 접촉 및 교류·협력을 통한 정문(앞문)선교, 중국 만주벌판을 유랑하고 있는 탈북동포들의 복음화를 통한 후문(뒷문)선교, 유진벨·선명회·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등 국제기구의 대북지원 사업 동참을 통한 측문(옆문)선교, 극동방송·기독교방송과 각종 언론 매체를 통한 윗문 선교, 새벽기도·심야기도·금식기도·작정기도 등을 통한 영문 선교가 그것이다. 많은 선교단체들과 교회들이 이 사역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그러나 각개전투를 하고 있다는 점이 한계다. 모두 다 구멍가게를 운영하는 모습이다. 지체의식(고전12:13)을 회복해서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음(엡4:4)을 온전히 이뤄가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


2. 실천방안

가. 마음통일을 향하여 : 통일의지 제고를 위한 대북 사랑기도운동 확산

  무엇보다 먼저 회개하자. 다니엘과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죄책고백이 가장 중요함을 지적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자기의 죄와 조상들의 허물을 자복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의지하여 용서해 주시고 해방시켜 주실 것을 간구하였다. 모두 응답받았다. 우리도 내 동포를 사랑하지 않고, 분단을 지속시킨 죄와 하나님보다 강대국을 더 의지한 허물을 회개해야 한다. 북한동포를 미워하고 증오했던 것과 세속적 이념과 가치들을 하나님나라 보다 더 높이 절대적 가치로 받아들였던 것을 회개해야 한다.

  또한 용서하고, 용서받자. 한국전쟁과 수많은 북한의 도발에 따른 원한과 미움, 증오에 더 이상 집착하지 말고, 그들도 전세계적 냉전체제와 분단시대의 피해자 임을 이해하고 용서해야 한다. 또한 이 과정에서 우리도 한국전쟁기간 및 분쟁과정에서 수많은 북한동포들을 살상했음을 기억하고, 북녘동포의 용서를 간구하는 일을 적극 논의해야 한다.

  보다 적극적으로는 북한동포들을 사랑하여, 마음을 얻도록 노력하자. 한국교회는 남북한의 체제를 초월하는 민족교회로서 화해자(peace maker)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십자가 절대사랑의 능력을 키워야 한다. 물론 한국전쟁과 수많은 무력 도발, 사람 납치, 관광객 저격,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을 자행한 북한을 포용하기는 어렵다. ‘자유’ 중심의 국가 발전을 이룩해 온 대한민국과 ‘평등’ 중심의 체제 발전을 도모해 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하나 되기도 매우 어렵다. 그러나 ‘박애’ 곧 ‘사랑’의 가치 안에서는 둘이 만날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절대사랑으로만 이 문제 해결 가능하다. 우리가 아직 원수되었을 때, 우리에게 친히 찾아오셔서 우리 죄를 대신 담당해 주시고 생명의 길로 인도하신 주님을 우리도 따라, 북녘 동포들에게 예수님 사랑을 전해야 한다. 정복과 패권의 십자군정신이 아닌 사랑과 섬김의 십자가정신으로 다시 일어나 섬겨야 한다. 그리스도 십자가와 사랑의 실천을 토대로 북한의 도발을 방지하되, 북한 주민의 마음을 사는 정책을 구사하고 노력해야 한다. 우리의 정책이 남북한 주민의 삶의 질 제고에 목적이 있음은 분명히 해야 한다. 북녘동포들을 사랑으로 섬길 때, 우리 자신과 우리 사회 또한 사랑으로 넘치게 된다. 그러면 복음적 평화통일은 이미 완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 교회는 정부와 함께 북한의 인생·인권·인도·인간 문제 해결을 병행 추진하자.(롬 12:18-21) 인권문제는 특별독재대상구역에 끌려가 있는 기독인들을 비롯한 북한주민들의 인권을 개선하는 노력이다. 인도문제는 경제난과 식량난으로 기아선상에 있으며 먼저 희생되는 노약자와 유아들을 포함한 북한주민에게 식량과 의약품 등을 지원하는 노력이다. 인간문제는 고령의 이산가족 생사확인·연락 및 재회와 납북자 및 국군포로 송환을 위한 노력이다. 인생문제는 2500만 북녘동포들의 복음화와 구원을 위해 선교하는 노력이다. 더 이상 대북인도지원 기독단체들을 ‘좌파 빨갱이’로 매도해서는 안된다. 앞에서도 살펴봤듯이 대북선교 통로는 다양하다. 오히려 의료시설과 학교 운영 등을 통한 대북인도적 지원이 대한민국과 기독교에 대해 대단히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는 북한 일반주민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북한선교의 첨병이며 가교가 될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한다. 조선말과 일제하 선교사들이 그렇게 우리에게 복음을 전했기 때문에 기독교가 이 땅에 뿌리내릴 수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북한선교와 복음통일을 위한 기도운동에도 더욱 힘쓰자. 우리의 복음적 평화통일문제는 혈과 육과 관련된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영적 세계와 관련된 복합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과거 분단 독일시대 동독 라이프찌히 성 니콜라이교회에서 진행된 월요평화기도회가 독일통일을 하나님의 시간에 놀라운 방법으로 이뤄내는 데 기여한 바가 대단히 큼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주빌리 통일구국기도회, 세이레평화기도회, 나라와민족을위한기도회 등 다양한 북한선교 및 구국기도회가 함께 연대하여 기도운동을 전개하면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나. 체제통일을 향하여: 통일능력 제고를 위한 대내 정의실천운동 전개

  우리민족의 통일주역으로 북한주민을 격려하자. 그들이 우리와 통일을 선택케 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를 북한동포들이 희망의 등대로 바라볼 수 있는 사회로 만들어야 한다. 물론 현재 북한주민들은 대한민국이 북한보다 경제적으로 발전하고 풍요롭다는 사실을 많이 알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한국주도의 통일에 대해서는 거의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평가된다. 비록 북한당국의 과장과 세뇌에 의한 것이라 할지라도 한국사회의 병리적 현상과 통일후유증도 어느 정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사회의 문제들을 해결해나가는 한편, 국내에 들어와 있는 32000여명의 탈북민의 정착과정을 보다 적극적으로 돌봐줌으로써 이들을 통해 북한가족들에게 올바른 소식이 전달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나라 시각에서 우리교회와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것은 복음통일을 위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오늘 우리사회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많은 곳에서 병들어 있는 모습이다.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 유다에게 음란과 부정부패와 거짓 문제를 경고하신 바 있다. 오늘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다. 아니 우리 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성도와의 추문으로, 교회재정 유용으로, 허세와 고소로 얼룩진 교회연합기구 혼란도 동일한 연장선상에 있다. 교인이기 때문에 더 성결하고, 더 경건하고, 더 정직하다는 평을 전혀 듣지 못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IMF 경제위기사태(1997), 북핵위기(2002)와 2차례 북핵 실험(2006,2009), 그리고 김정일 사망(2011) 그리고 끊임없는 북한의 도발가능성(2012이후 지금까지)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깊이 생각해보야 한다. 회개하고 돌이켜야 한다. 예레미야의 대언적 경고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던 유다는 결국 망하고 말았다. 그러나 우리가 회개하고 돌이켜 건강한 교회와 사회를 만들어 나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선물로 복음적 평화통일을 선물로 주실 것이다.

우리 사회문제와 통일문제에 대해 성경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 1990년대 탈냉전시대에 들어와 우리 사회는 문제해결방법을 찾는 데 있어 이성적이고 통합적이기 보다, 감정적이고 극단적인 자세와 주장이 넘쳐나고 있는 실정이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성경말씀에 기초하여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면서 현실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당성과 실효성을 함께 가진 대안들을 각 분야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이미 국제사회에서는 통일한국의 정체성에 대해 기대가 큼. 21세기 태평양-동아시아 시대에 중심국가로 일어날 통일한국이 어떤 국가적 정체성을 갖고 세계역사에 기여할 것인지를 관심을 갖고 주시하고 있다. 과거 패권국가들과 같은 Pax Koreana가 아닌 새로운 선도국가로서의 New Peace Koreana 시대를 열기를 기대하고 있다. 세계 속 한국역할이 한국인의 생각보다 커지고 중요해지고 있다. Fast Follower에서 First Mover로 위상변화가 있다. 후후발 추격국가에서 새패러다임 제시 선도국가로 바뀌고 있다.

 

  평화대한민국을 만들어가자. 통일은 ‘신 국가건설(New Nation-building)’을 의미한다. 통일대한민국은 남북한공존을 전제로 미․중․일․러 주변4국이 우호적으로 협력하고 지지할 수 있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한반도와 영토적으로 접해있거나 영향을 미치는 주변4국은 하나같이 대국들이며, 21세기에도 계속 대국의 지위를 유지하면서 더욱 강성해지는 국가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 대국건설을 통일한국의 지향으로 삼아야 할 까? 기존의 통일한국의 미래상으로 ‘더 큰 대한민국’ ‘선진통일한국’ 등이 제시되었으나, 이런 주장들은 기본적으로 19세기적 ‘부국강병론’에 기초하고 있다. 물론 국가의 생존과 번영차원에서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를 넘어서야 한다. ‘창대(powerful)하고 거부(rich)’가 되었으나 고아와 과부를 돌보지 않고 악한 행위 속에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사회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직접 복수하시겠다고 천명하셨기 때문이다. 렘 5:27-30.

 우리 근대민족지도자들도 단순 부국강병론을 넘어 좀 더 품위 있는 국가위상을 추구했다. 송재 서재필은 ‘민주국가’, - 우남 이승만은 ‘자유국가’, 도마 안중근은 ‘평화국가’, 백범 김구는 ‘문화국가’, 도산 안창호는 ‘공의국가’ 등을 지향했다. 이들의 꿈은 생존과 번영을 넘어 국가위신을 생각했고, 이들의 지향국가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평화대국이 될 것이다. 통일대한민국은 바로 사분오열된 국내적 갈등을 해결하고 주변4국의 지지와 존경을 받으며 세계의 모범이 되는 평화대국이 될 것이다.

다. 국토통일을 향하여: 통일환경 조성을 위한 대외 평화외교운동 추진

  한반도에 새로운 바람이 거세게 불기 전에 한국교회가 북한선교와 복음통일, 세계선교와 세계평화를 위한 대전략을 착실히 준비하는 것도 필요하다. 기독교학회, 기독교통일학회를 위시한 여러 기독학회와 평화와통일을위한 기독인연대, 한국기독교통일포럼, 한기총통일선교대학, 평화한국, 기독교북한선교회 등 기독NGO들이 통일신학을 공동 수립해서 한국교회에 통일·선교 로드맵(방향과 내용)으로 제시해야 한다. 

  국제적으로는 하나님의 평화(Shalom) 관점에서 미·중 패권갈등이 심화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동시에, 한반도 통일 초석을 놓기 위해 대전략(Grand National Strategy)과 선교대전략을 준비해야 한다. 특히 교회는 동아시아 선교강화 및 국제평화회의를 개최하여 한반도 평화통일환경을 조성한다. 이를 통해 미국의 재복음화와 중국의 복음화, 쓰나미 이후 좌절하고 있는 일본선교와 일어나고 있는 러시아 선교 적극 추진하여 동아시아 복음화를 위해 적극 노력한다.

  이제 복음통일과 세계평화를 향한 사명감당을 위해 하늘의 도우심과 지혜를 구하며 국내 ’87정치체제 및 ’97경제체제 한계와 북한의 핵도발과 국제 마초들의 ‘철권외교’(Iron–fist Diplomacy)를 비롯한 절대폭풍을 극복하도록 노력하자. 복음통일․영성대국․세계평화의 사명 감당을 위해 하나님의 도우심과 지혜를 더욱 구하자. 대한민국을 위해 기도하며, 새로운 각오로 우리 민족의 성경사적·인류사적 소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노력할 때다. 이사야 19:23-25

 

3. 2020년 한국교회 실행계획 제안

첫째, 2020 판문점연합예배를 한국교회가 추진하자.

둘째, 이를 위해 2020 세이레평화기도회(6월5일~25일)를 한국교회가 진행하자.

셋째, 한국교회 하나되어 복음통일 추진하자. 

한반도의 평화와
동북아평화연구원의 비전
         



 닐리 개스톤(Neely Gaston)
전 고든콘웰신학대학원부총장, 총장특별보좌관 

  고든-콘웰신학대학원은 동북아의 평화연구원을 개설할 수 있음에 기쁩니다. 저희의 임무는 학생들을 신학적으로 생각하도록, 전 세계적으로 적극 관여하도록 그리고 성경적으로 살도록 준비시키는 것입니다. 1995년도 그 당시 총장이셨던 로버트 쿨리 박사는 이렇게 적으셨습니다. “변화의 바람이 신학적 토지에 불어오고 있다, 드라마틱한 방법으로 신학 교육의 본질에 도전하고 있다. 예전과는 다른 교실 학습, 기술의 발전, 경제적 동향, 신학자들의 노화, 여러 종파들의 개요 변화, 그리고 늘어나는 다문화 학생들이 신학교들로 하여금 그들의 임무와, 우선순위와 그리고 역점들을 다시 재평가하도록 하고 있다.” 

  이것은 20년 보다도 더 오래 전에 쓰여졌지만, 이 예언적 말씀들은 오늘날의 대학교육을 이끌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술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비젼을 넓히고 있습니다. 디지털 생방송은 학생들에게 전인적인 방법으로 교육에 접근하도록 하는 획기적인 계획입니다. 여러 기술의 혁신을 사용하여 학생들이 그들의 사역지에 머물 수 있도록 하면서 그들을 세계적인 교실로 데려오는 데에 지렛대 역할을 합니다. 기술을 이용하여, 디지털 도서관 자료를 통해서, 그리고 세계 곳곳의 교수진들로 하여금 여기의 남한 학생들은 사역과 선교에 대해 훈련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학생들은 고든-콘웰신학대학원에 디지털 비드쿠르터 지원 경로를 통하여 자신의 모국어로 지원할 수 있습니다. 고든-콘웰신학대학원의 석사과정에서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들을 위한 영어 과정도 개설되어 있기도 합니다. 이것은 유학생들이 다문화 그리고 다 언어 세계에서 사역할 수 있도록 훈련하기 위함입니다. 동북아 평화와 화해 연구센터는 다문화 환경에서의 사역과 선교를 위한 훈련을 제공할 것 입니다.

  영안장로교회 당회장 목사님이신 양병희목사님께서는 동북아한민족협의회 대표회장님이시며 리더이십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첫 컨퍼런스가 이곳과 서울에서 개최되어 진행되고 있고 그리고 상호적인 컨퍼런스가 노쓰캐롤라이나, 샬롯에서 내년 봄에 열릴 예정입니다. 양목사님의 북한과의 업적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고든-콘웰신학대학교는 이 일에 동반자의 관계가 된 것에 신이 납니다.

  한 반세기 전에 미국선교사들은 조선에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이제 한국교회는 미국교회와 손을 잡고 함께 세계를 위하여 있다는 수준까지 성장했습니다. 고든 콘웰 신학대학원은 양병희 목사님을 동북아평화연구원을 지도하는 데 가장 탁월한 적임자로 여기며 동북아평화정착을 위한 연구, 동북아와 세계 평화를 위한 미국교회의 참여, 그리고 미국 정치책임자들과 기관들(주정부, 연방정부)의 실천적 참여를 촉진하고자 합니다.

  왜 고든콘웰신학대학교인가요? 저희는 저희 학생들이 신학적으로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저희는 깨진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살도록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평화와 화합을 생각하시며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구약전서에 나오는 “샬롬” 안에 함께 살도록 의도하셨습니다. 베다니 호앙과 크리스텐 존슨이 최근에 쓰신 책, ‘공평을 부르다: 열정과 인내가 만날 때’에 이렇게 나옵니다. “우리가 지키도록 말씀하신 창조 성경 이야기에 나오는 샬롬에는 4개의 서로 밀접한 관계의 층이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 다른 사람과의 관계, 나와의 관계 그리고 창조물과의 관계이다”. 창세기 3장에서 우리는 이러한 샬롬의 층이 깨져있음을 봅니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날 세상의 깨짐의 예 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러한 깨진 세상에서 사역을 하고, 회복의 소망과 평화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하시는 은혜를 통하여 가져오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명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구원은 영혼뿐만이 아니며, 몸과 삶이 탈바꿈을 하도록 뜻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죄 사함을 받고 다시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헌신된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 세상을 찾았을 때보다 이 곳을 더 좋은 세상으로 남기고 떠납니다. 하나님과의 화합이 있어야 하고, 나 자신과의 화합이 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화합이 있어야 하며, 그리고 창조물과도 화합이 있어야 합니다. 복음은, 그리스도 안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선포를 하도록 합니다. 하지만 또한, 사역, 교육, 의료, 충분한 식사와 주택, 그리고 새로운 사회적인 공공기반시설을 통한 사회의 변화는 하나님 나라의 일, 평화 그리고 화합을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타락한 세상에서는, 사회가 그 자신만을 챙깁니다. 하나님께서 창세기 4:9에 가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의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가인이 대답했습니다, “저는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챙기는 관리자인가요?” 가인은 사실 아벨이 하나님께 드린 제물을 시기해서 동생을 죽였습니다. 깨짐은 죽음, 화합하지 못하는 것, 그리고 전쟁으로 이어집니다. 회복은 생명, 화합, 그리고 평화를 가져옵니다. 이것은 오직 갈보리 십자가에서 찾을 수 있고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무엇을 하시고 계신가요? 하나님은 우리가 어떻게 평화와 회복, 화합 그리고 좋은 뜻을 찾도록 이끌고 계시나요?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행동하나요? 고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처남이신 레이튼 포드 박사님이 자신의 책, ‘듣는 삶’에서 이렇게 제안하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관찰하고, 돌이켜 생각해보고, 행동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하시고 계신 일에 대해 관찰하기로 되어 있고 그리고 그 움직임에 대해 맞추어 가도록 추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돌이켜 생각해보고, 시간을 들여서 생각하고 기도하고, 또한 신뢰하는 친구들과 동료들에게 조언을 구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비추어 돌이켜 생각해 보는 것이 가장 도움이 됩니다. 누가복음 10장에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이 비유에는 세 명의 유대인들이 여리고 가는 길목에 다친 사람 옆을 지나 갑니다. 그리고 이 사람을 돕기 위해서 가던 길을 멈추지 않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도와줍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 사람에게 숙소를 찾아주고 값을 지불합니다. 예수님께서 물으셨습니다. “이 세 사람 중에, 너는 어떤 사람이 이 사람의 이웃이라 생각하느냐?” “도와준 한 사람입니다” 라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가라 그리고 이와 같이 해라”.

  마태복음 22장에 예수님께서 질문을 받으셨습니다. “선생님, 계명 중에 어떤 것이 가장 큰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마음과 네 목숨과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이제는 세계적으로 개입되는 것이 우리 삶에 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 전세계로부터 오는 원료, 제품 그리고 서비스를 제공 받는 것이 가능합니다. 제가 소년 시절에 남한은 제게 저 다른 쪽에 있는 작은 나라였습니다. 한국 전쟁 때 이곳에서 참전하셨던 제 삼촌과 사촌들에게 얘기 들었던 곳이었습니다. 오늘날은 삼성, 엘지 그리고 현대가 미국의 살림살이 브랜드입니다. 18시간이 채 안 되는 시간에, 저는 노쓰캐롤라이나의 샬럿에서 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컨퍼런스에서 연설 할 수 있습니다. 미국과 남한은 세계적인 무역 동반자입니다. 또한 혹시 모를 적군이 자유와 자유무역을 가지고 위협하는 것으로부터 서로를 옹호해주고 지지해주는 동맹국입니다. 상품과 원료가 세계 다른 나라와 거래되고, 세계의 소비자들의 제조와 생산에 대한 필요를 채워주고 있습니다. 의료 그리고 정보통신기술도 공유하며, 진정 세계적인 경제 속에 있는 모든 동맹국들의 삶의 질을 거의 매일 높여 주고 있습니다. 급속히 발전하는 해운물류항로 네트워크는 대부분을 차지하는 세계 무역의 수단이고, 국제법은 이러한 항로가 열리고 자유롭도록 합니다.

  중국, 일본, 러시아, 인도, 대한민국, 그리고 미국에서 50%가 넘는 세계의 국내총생산- GDP를차지합니다. 오늘날의 중국은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군사력을 가지고 있고, 1992년부터 군사 방어시설에 대한 지출을 650% 늘렸습니다. 이에 비교하여 러시아에서는 군사 방어시설에 대한 지출을 58% 늘렸고, 1992년부터 미국은 군사 방어시설에 대한 지출을16%만 늘렸습니다. 세계는 군사 방어시설에 대한 지출을 늘렸고 또 세계 시장을 원하는 갈망 때문에 더 위험한 곳이 되었습니다. 미국과 대한민국의 지적 자산은 매년 600억불씩 도난 당하고 있고, 중국이 주된 범인입니다.

  러시아와 중국이 북극 지역에서 더 많은 군사 기지를 차지하게 하기 위해 강구하고 있고, 북국에서 나타나는 지구 온난화 현상은 세계 해운항로에 더 큰 위협을 주고 있습니다. 북한은 계속해서 핵 무기공장을 가속화시키고 있으며, 남한과, 일본 그리고 미국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 새로운 무역 협정을 맺을 방안을 찾고 있고, 비핵화된 한반도를 만들기 위해서 평화로운 방법이 무엇인지 찾으려 김정은과 만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이러한 일에 일하고 계십니까? 저는 하나님께서 트럼프 대통령을 인도하셔서 로버트 오브라이 언을 그의 새로운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세우셨다고 생각합니다. 오브라이언은 능력 있는 협상가이고 그리고 특정 관념이 없는 외교 정책 전문가입니다. 미국 무역 분쟁은 세계적으로 권력이 센 워싱턴과 베이징 가운데 몇십 년 동안유발하게 될 지정학적, 경제적, 군사적 그리고 기술적인 재조정의 시작을 이룹니다. 로버트 오브라이언은 지금 이 시간에 관계 부처간을 조직화하고 선택 사항들을 준비하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추천하기에 가장 알맞은 적임자로 보입니다. 저는 이 일이 여기 한국에서 북한과 평화와 화해를 찾으려 하는 이미 시작된 일들과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라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희에게 방법을 보여주시려 평화의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방법은 평화와 화해입니다.

  하나님께서 양목사님의 마음에 평화와 화해의 비젼을 심으셨습니다. 양목사님과 양목사님의 교회는 수년 동안 지칠 줄 모르고 탈북자들을 섬겨오셨고 북한과 남한 사이에 평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오셨습니다. 양목사님의 열정이 고든-콘웰신학 대학원도 이 일에 신학적 교육을 통해 함께 하고 싶도록 이끄셨습니다. 이 새로운 일에 동북아의 평화와 화해를 위한 연구 센터가 저희의 학생들을 신학적으로 생각하도록, 세계적으로 관여하도록, 그리고 성경적으로 살도록 하는 임무에 꼭 들어맞습니다. 저희의 바램은 여러분과 함께 동역하며 그리스도를 섬기는 이들을 훈련하는데 단지 복음을 북한과 중국에까지만 들고 오는 사람들이 아니라, 더 나은 학교와, 병원, 사회 공공기반시설 그리고 더 나은 삶의 질을 강구하면서 평화와 화해를 추구하는 이들을 훈련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학적으로 생각하고, 세계적으로 관여하고, 성경적으로 살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함께 하는 일도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성경은 한반도 재통일에 대해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고세진 교수
전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총장,
전 이스라엘 Jerusalem University College 총장

서론


  분단된 한반도를 다시 하나로 만드는 일에 관해서 성경은 무엇을 지시해 줄 수 있는가? 이것은 몇 가지 주제들에 대한 답을 얻어야 논설할 수 있는 어려움을 내포하고 있다. 우선, 신약성경이 말하는 복음이 평화통일의 길을 말하고 있느냐? 그리고 통일왕국의 분열을 기록한 구약성경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이다. 둘째는 한반도의 북쪽에 있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약자: 조인공)과 남쪽에 자리잡고 있는 대한민국이 정치체제와 이념과 문화와 70년 동안의 헤어짐을 극복하고 평화롭게 서로를 포용하고 하나가 되어 제삼의 국가를 이룰 수 있겠는가? 하는 질문이다. 이 두 번째 질문은 다시 평화는 무엇을 말함이며,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통일은 무엇이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추구하는 통일은 무엇인가하는 두 가지 질문들에 대한 답이 있어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짧은 글에서 위의 명제들을 모두 논의하고 답을 낸다는 것은 과하므로, 중심으로 논할 것을 추려내고 나머지는 청중이 보유하고 있는 전이해와 지식에 맡기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본다. 대한민국이 이루려는 자유민주주의적 통일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인공)이 줄기차게 추구해 온 통일에는 개념과 방법에서 현저한 차이가 있음을 청중은 이미 알고 있을 것으로 알기에 생략한다.

 그리고 그 통일을 평화롭게 완성한다는 면에서, 평화라는 단어에 대한 개념을 간단히 정리를 하고 나서 복음적으로 두 정치체제가 통일되어 제삼의 정치체제로 승화될 수 있을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필자는 이 글에서 한반도의 두 정치체제들을 남한과 북한이라고 하지 않고 대한민국과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 (조인공)이라고 지칭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그 체제들의 정식명칭들이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이 둘은 외견상 같은 민족처럼 보이지만, 내적으로는 판이하게 다른 이데올로기와 정치행태를 가지고 있다. 남한, 북한 이라는 용어들은 이 둘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할 가능성이 있다.  

  

본론:

1. ‘평화’라는 말의 뜻은 무엇인가?

  인류의 삶에서 물과 공기처럼 중요한 것이 함께 사는 것인데 함께 삶의 요체는 평화이다. 개인의 마음 속의 평온, 가족의 화목, 사회의 화합, 국가의 안녕, 이 모든 것을 하나의 단어 ‘평화’로 정리할 수 있다. 한문으로 평화(平和)라고 하는 것을 한글로는 적을 길이 없다. 우리에게 평화의 개념이 없어서가 아니라, 오랫동안 한문으로 그 개념을 표현하다보니 한글로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게 된 것이다. 그렇게 지낸 결과, 우리가 쓰는 평화라는 단어에는 ‘큰 싸움이 없이 그럭저럭 지내는’ 소극적인 상태를 평화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고 사전에서 정의하는 평화의 의미도 그러하다. 이러한 상태의 평화가 지난 70년 동안 한반도 안의 대한민국과 조인공을 공존의 형태로 붙들고 있다.   

  우리가 한반도의 복음적 평화통일을 논할진대, 성경이 말하는 평화가 무엇인지 살펴 봄이 옳을 것이다. 구약성경에는 평화를 말하는 ‘샬롬’이라는 단어가 250회 정도 나타나고 있다. 이 단어는 갈등이나 싸움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을 포함하며, 화합과 협조를 통하여 사람사이의 관계나 사회적 공동체에 법과 질서가 서 있는 온전한 상태를 의미한다. 신약성경에는 ‘샬롬’에 버금가는 ‘에이레네’가 91회 정도 나타난다. 이 단어는 헬라적 말이긴 하나 로마시대에 살던 유대인들의 생각은 이 단어와 샬롬 사이에 큰 벌어짐을 경험하지는 않은 것 같다.

  한국말의 ‘평화’보다 ‘샬롬’이나 ‘에이레네’가 훨씬 더 깊이나 차원에서 유의미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한반도를 평화롭게 재통일한다고 할 때에는 ‘전쟁이 없이’ 또는 ‘피흘림이 없이’ 두 체제가 하나로 거듭나는 것이라고 단순하게 개념을 정리하고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본다.

2. 신약성경의 네 복음서들은 두 쪽으로 분열된 한반도를 평화롭게 하나로 다시 통일시킬 수 있는 방법이나 단서를 제공하고 있는가?

  예수의 행적과 가르침에 대한 해석은 설교자나 학자의 입장과 선입견에 따라서 달라 질 수 있겠지만, 예수가 국가의 일이나 정치적인 사안에 대해서 대중이 행동하도록 가르치거나 깊히 관여한 것에 대한 심도있는 기록은 찾아 볼 수 없다. 그가 가르친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해석하던 그것이 한반도 재통일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물론, 예수가 열성적으로 가르친 사랑과 용서와 회개와 기도의 가르침을 끌어다가 한반도 재통일의 원리로 재가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럴 경우에,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고 (마 18:22), 원수를 사랑하며 (마 5:44; 눅 6:27, 35), 오른쪽 뺨을 때리면 왼쪽 뺨도 돌려대어 한 번 더 맞으며 (마 5:39), 너의 이웃을 너의 몸처럼 사랑하라 (마 19:19, 22:39; 막 12:31)는 것을, 대한민국이 한반도 재통일전략의 일환으로 삼을 수 있겠는지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왜 그러냐하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지도자들이나 백성들이 한반도 재통일에 대하여 전혀 다른 방법과 정책을 가지고 있는 한, 대한민국 사람들의 ‘복음적 접근’은 배신을 당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신에 대한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두 정치체제 하에 있는 두 집단들이 서로에게 갖고 있는 인간적이고 집단적인 믿음의 차이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요는 복음서들의 내적인 증언에서 우리는 한반도 재통일에 대한 직접적인 가르침을 찾아내기가 어렵다는 일차적인 장벽에 부딪힌다. 거기에 대한민국에서 실제적으로 한반도 재통일을 담당하는 정부와 정책 담당자들이 복음적 견해를 수렴하지 않는다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더 나아가서 조인공이 가지고 있는 무신론적이고 일인왕조체제적 정권이 대한민국의 세속적 정권의 재통일 정책이나 기독교 복음평화적 재통일 접근에 대하여 도외시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좌절감을 성찰할 필요가 있다. 

 예수는 둘로 쪼개진 집안이나 국가를 하나로 묶는 것에 대한 가르침 보다는 오히려 하나를 둘로 갈라놓는 듯한 말씀을 하셨다. 

  “내가 세상에 화평(평화)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마 10:34).

  이것은 예수 자신을 따르는 사람과 그렇지 아니한 식구를 분리하는 가르침이니 (마 10:37), 신앙인과 불신앙인 사이에 금을 긋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앙적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가족이니 민족이니 하는 감성적 명제 아래에서 두 단체나 체제가 재결합되는 것은 복음적인 길(예수의 뜻)이 아니라고 추론해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신앙적 합일이 없는 상태에서 대한민국과 조인공이 결합하여 한반도를 평화롭게 재통일 한다는 불가능한 일이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양쪽의 백성들이 융화하고 화목하게 장구한 역사를 이어 나아갈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위에 열거한 사실들을 반추해 볼 때에, 대한민국과 조인공이 한반도 통일을 이룩하도록 실제적 복음적 방법론을 제시하기 어렵다는 것을 실토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재통일을 협상하는 양쪽의 당사자들이 복음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며, 동시에 복음 자체가 그러한 통일에 대한 가르침을 직접적으로 제시하지 않고 때문이다. 굳이 한반도 재통일의 복음적인 방법을 성경에서 찾아낸다고 하면,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신다” (엡 1:10)고 천명하신 것을 따라서 양쪽을 그리스도 (야웨 하나님) 앞에 복종시킨 후에야 두 체제를 피 흘림(전쟁)이 없이, 또는 어느 것이 다른 것을 정복하지 않고 하나로 만드는 통일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 상황에 관한 지식이 있는 사람은 이것이 문제에 대한 신앙적 접근의 본질이기는 하나,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전진이 아니라 후퇴가 될 수 있음을 파악하는 지혜가 있을 것이다.  

3. 구약성경은 한반도 평화통일에 대하여 무엇을 시사하고 있는가?

  고대 이스라엘 민족은 다윗이 집권하면서 통일왕국을 이루었다. 그의 아들 솔로몬의 치세가 끝나고 그의 손자 르호보암이 등극하면서 국가가 둘로 쪼개지는 역사적 현실을 겪었다. 그러므로 국가분단 현실을 겪은 고대 이스라엘의 경험에서 약 3,000년 후에 한반도에서 발생한 분단의 치유를 촉진할 수 있는 어떤 단서가 있지 않을까 추측을 해 볼 수 있다.

  (가) 고대 이스라엘 분단과 현대 한반도 분단 사이의 유사성 

    이스라엘 땅에 있던 이스라엘과 유다라는 분열왕국들과 한반도에 있는 대한민국과 조인공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유사성이 있다.

    (1) 분열된 이스라엘의 두 왕국들을 구성하고 있는 백성들의 주류는 같은 종족이었다. 물론 출애급할 때에 섞여 들어 온 다른 족속들과 가나안 땅에 섞인 현지 족속들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이스라엘의 백성의 큰 줄기는 히브리족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한반도에서 북쪽을 차지하고 있는 조인공과 남쪽에 자리잡고 있는 대한민국의 백성들도 큰 줄기에서 하나의 민족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2) 남쪽의 유다 왕국의 종교는 야웨(여호와)를 믿는 유일신교였다. 북쪽의 이스라엘은 창시자 여로보암이 만든 새로운 종교를 믿었다. 절기와 제사가 유다의 것들과 비슷하고 신앙의 대상이 바알과 토착 신들로 바뀐 혼합종교이었다. 한반도의 남쪽에서는 야웨를 믿는 기독교인 수가 국민의 20% 정도가 된다. 북쪽의 조인공은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유물사관을 추종하면서도, 김일성 일가의 권력자들을 숭배하는 유사종교를 이룩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 때는 동양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리웠던 평양에서도 그리스도교는 존재감이 없고, 물론 다른 종교들의 흔적도 없다.

   (3) 이스라엘 민족의 통일국가가 쪼개질 때의 근본적인 원인은 인간적인 차원에서 보면 경제적 이유이었다. 북쪽 열 지파들의 대표자인 여로보암이 갓 등극한 르호보암에게 요구한 것은 세금 감면과 강제노역 완화 이었다. 한반도의 북쪽에 조인공이 들어설 때에도 노동자 농민의 지상천국을 지향하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기치로 내걸었다. 물론, 그것은 조인공의 정치 이데올로기였을 뿐이고, 백성들은 풍부한 가난 속에 빈약한 인권을 경험하는 조인공의 철권체제에서 벗어 날 수 없는 상황에서 70년이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대한민국에서 인권과 물질의 풍요를 누릴 수 있는 지상천국이 이루어졌다.

   (4) 이스라엘 민족의 국가 분단에는 외부 강대국 세력의 부추김이 있었다. 여로보암은 솔로몬의 정책에 반발하였다가 국외로 도망하여 당시에 강대국이었던 이집트에서 얼마 동안 지냈다. 그는 이집트를 등에 없고 귀국하여 반 다윗왕조 운동을 주도하였고 결국에는 나라의 북쪽을 잘라내어 스스로 왕이 되었다. 한반도가 분단되었던 상황에도 외세의 개입이 있었고, 실은 고대 이스라엘이 겪은 것보다 더 복잡하고 강력한 외부 강대국들의 영향을 받았다. 당시에는 세계2차대전 후에 일본, 미국, 소련, 중국이 한반도를 놓고 각축을 벌이던 때였다. 김성주(나중에 김일성으로 불리움)라는 소련군 장교는 소련 정부의 힘을 등에 없고 한반도 북쪽에 들어와서 백성들에게 새로운 나라건설을 약속하며 일본제국주의 침략과 지배로 허약해진 경제와 민심을 이용하여 조인공을 만들었다.

   (5) 분단된 이스라엘의 두 왕국에 살던 백성들은 어떻게 살았는가? 그들은 상대국의 백성들에게 적대적이었는가? 그걸 설명하는 고대자료가 별로 없어서 파악하기 어렵지만,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다. 두 나라의 지도층이 이끄는 대로 백성들을 따라갔고 상대국의 백성에 대해서는 비록 부족이나 씨족이 달랐지만, 큰 이질감을 드러내지는 않았던 것 같다. 현대 한반도에 있는 두 국가들 사이에도, 백성들은 각자의 정치체제가 이끄는 대로 따라갔었고, 한국전쟁 또는 6.25 전쟁이라고 부르는 전쟁도 치렀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또한 둘은 민족적으로 같으며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이 양쪽에 다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어떤 식의 통일을 이루어야 할지는 각자 다르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나) 고대 이스라엘의 분단과 현대 한반도 분단 사이의 차이성

    (1) 고대 이스라엘의 분열에는 없는 이데올로기적 분열이 한반도 분단에 작용하였고 여전히 강력하다. 조인공은 공산주의와 무신론으로 수립되었고 지금은 그 기조에 김일성 가문 우상화가 추가 되었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유신론으로 수립되었고 지금도 그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2) 고대 이스라엘의 분단 왕국들은 주변의 강대국들과 교류하였지만, 평등동맹이나 혈맹은 아니었고, 오히려 적대적인 경우가 있었다. 반면에 한반도의 조인공은 소련과 중국이라는 두 강대국과 동맹과 혈맹으로 유대관계를 맺고 있으면서 대한민국을 정복하려는 계획을 버린 적이 없다. 이에 대항하여 대한민국은 미국을 혈맹과 동맹으로 삼고 일본과 협력하면서 아시아 대륙의 북동쪽에서 압박을 가하고 있는 조인공 그룹에 대항하여 왔다.

  (다) 고대 이스라엘 분단 상황에서 구약성경은 어떠한 통일의 방법론을 제시하였던가?

    신약성경에서 보았듯이 구약성경에서도 이스라엘 국가나 땅의 재통일에 대해서 언급한 내용을 찾아보는 것이 쉽지 않다. 예언서 에스겔 37장에 분단국가 재통일에 대한 야웨의 예언이 나온다.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막대기 하나를 가져다가 그 위에 ‘유다와 그 짝 이스라엘 자손’이라 쓰고, 또 다른 막대기 하나를 가지고 그 위에 에브라임의 막대기 곧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쓰고, 그 막대기들을 서로 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라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 (16-17절).

    그런데 이 본문은 고대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가 현실적으로 서 있던 때에 나온 예언이 아니다. 두 나라가 강대국들인 아씨리아와 바빌론에게 멸망 당하고 상류층과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간 후에 에스겔에게 주신 야웨의 말이었다. 다 망한 나라들에서 뿔뿔히 흩어진 백성들을 모아서 하나의 나라를 만들겠다는 뜻이었다. 따라서 이 예언은 두 왕국의 현실적 재통일을 말한 것은 아니었다. 또한 ”그들이 그 우상들과 가증한 물건과 그 모든 죄악으로 더 이상 자신들을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내가 그들을 그 범죄한 모든 처소에서 구원하여 정결하게 한즉,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23절)라고 하여 통일된 나라가 세속적이 아니라 신정통치의 나라임을 말하고 있다. 이것을 한반도의 평화로운 재통일에 적용하는 데는 어려움이 적지 않아 보인다.

  (라) 구약성경은 분단국가의 재통일보다는 신앙적 순수성에 더 관심이 있다

    결론에서 제시하겠지만, 구약성경은 이스라엘 민족의 두 분단국가들이 어떻게 재통일하느냐 보다는 그들이 어떻게 사람이 해서는 안 될 일들을 멀리하고 참되고 아름답게 야웨 하나님의 법도를 현실생활에서 실현하느냐에 관심이 있다. 실은, 이스라엘 통일왕국이 둘로 쪼개진 것은 불신앙에 대한 야웨의 심판이었다. 따라서, 신앙적인 순수성이 회복되지 않는 한, 분단이 아물어서 하나가 될 수는 없었다.

  결국에는 통일왕국 재현은 꿈도 꾸어보지 못한 채, 북왕국 이스라엘은 서기전 721년에 아씨리아에 멸망 당하고, 남왕국 유다는 서기전 586년에 바빌론에게 멸망 당하였다. 우리는 이것을 교훈으로 삼아서,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의 참됨을 유지하는데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그것이 한반도를 복음적으로 평화롭게 통일하는데 선결조건이 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4. 현재의 한반도 통일정책이 평화통일로 가기 보다는 대한민국이 조인공에 종속되는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 정부의 한반도 재통일 기조는,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정체성을 버리고 조인공의 공산주의적이고 공격적인 통일노선에 부합하는 모양으로 가고 있다고 본다. 이것은 성경이 그렇게 강조하고 있는 국가의 신앙적 기반을 파괴하는 것이며, 여타 종교들의 신앙자유마저 말살하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현 대한민국 정부의 대 조인공 정책은 군사적인 면에서 볼 때에 일방적인 무장해제 수준으로 가고 있다. 몇 가지만 열거해도 그것을 알 수 있다. 2018. 9. 19. 에 체결한 남북군사합의서는 대한민국의 합리적이고 방어적인 군사훈련과 방공초계비행마저도 금지하고 있다. 반면에 조인공은 핵무기를 계속하여 개발하고 생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2019년에 들어서도 10여회의 탄도미사일 발사와 잠수함 이용 미사일 발사에 성공하고 있으며, 10월에 들어서는 대륙간 탄도미사일 실험을 다시 하겠다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가 인민군이 한강 물길을 조사하게 허락하고 한강어구 가까운 함박도에 조인공 군의 경계시설이 들어섰으나 국방부장관은 함박도가 조인공 땅이라고 설명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많은 군 부대들을 해체하거나 통합하여 국방력을 저하시키고 있며 군장성들과 지휘관들을 축소하여 국군의 지휘통제체계를 약하게 만들었다. 국경선을 따라서 10개의 초소들을 철수하고 그곳들에 매설되어 있던 지뢰들을 제거하고, 서울로 들어오는 길들의 방호차단 시설들을 제거한 것은 서울과 대한민국을 벌거벗겨 무방비 상태로 만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조인공의 포격을 막을 수 있는 싸드 장비를 국내에 배치하는 것마저도 문재인 정부는 허락하지 않고 있다. 현 대한민국 정부가 저질러 놓은 이러한 조치들은 비성경적이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보면 야웨는 이스라엘 백성의 안전과 안보에 관심을 기울였다. 다만, 야웨는 신앙을 이유로 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안전과 파괴의 잣대로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대한민국의 현재 정부가 국가의 안보와 관련하여 벌이고 있는 외교행각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 우선은 이 나라의 성장과 번영에 지대한 공헌을 하여 온 한국과 미국의 동맹을 약하게 하고 나아가 그것을 깨어버릴 수 있는 조치들을 실천하고 있다. 핵무기를 가진 조인공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재래식 무기만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이 미국과의 동맹을 약화시키거나 깬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대한민국이 제대로 된 응전을 하지 못하고 조인공군의 무력 앞에 무너져 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은 야웨를 믿는 사람들이 신앙에 충실하면, 야웨가 지켜 준다고 한다. 이제 대한민국이 안보적 위기에 처한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떠한 경각심을 주는가? 왜 야웨는 이러한 불안한 국가적 상황이 현 정부를 통해서 일어나는 것을 막아주지 않고 있는가? 그것을 잘 생각해서 그리스도인들이 악을 버리고 부정부패의 길을 떠나고 선한 삶과 참된 신앙을 추구하여야 할 것이다. 

결론:

  우리는 지금까지 한반도를 재통일하는 데에 성경이 말하는 복음에서 가르침을 얻고자 했는데, 직접적인 지시나 언급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야웨 하나님의 주권과 성경이 강조하고 있는 용서와 사랑과 회개와 참된 신앙과 신적인 치유의 원리에 기대어 한반도 재통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일들을 할 수 있겠다.

1. 한반도 분단에 대한 성경적이고 신앙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고대 이스라엘이 두 나라로 쪼개진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다. 그것은 열왕기서에 명시되어 있다. 야웨는 선지자 아히야에게 여로보암을 만나서 국가분단의 뉴스를 전해 주었다.

  그 즈음에 여로보암이 예루살렘에서 나갈 때에 실로 사람 선지자 아히야가 길에서 그를 만나니 아히야가 새 의복을 입었고 그 두 사람만 들에 있었다. 아히야가 자기가 입은 새 옷을 잡아 열두 조각으로 찢고 여로보암에게 이르되, ”너는 열 조각을 가져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나라를 솔로몬의 손에서 찢어 빼앗아 열 지파를 네게 주고, 오직 내 종 다윗을 ...... 위하여 한 지파를 솔로몬에게 주겠다’ (하였다)“ (열왕기상 11:29-32).

  그렇게 다윗이 이룩한 통일왕국을 야웨 하나님이 쪼개는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야웨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는 그들이 나를 버리고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과 모압의 신 그모스와 암몬 자손의 신 밀곰을 예배하며, 그의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지 아니하여 내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나 보기에 정직한 일과 내 법도와 내 율례를 행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열왕기상 11:33).

  그렇다면, 조선시대와 대한제국을 거치면서 새로운 국가를 이룩할 즈음에 한반도가 두 동강이 난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는 한반도의 재통일을 고민하기 전에 그 이유에 대하여 성경적으로 신앙적을 깊게 반성하고 고민하는 것이 먼저해야 할 순서가 아니겠는가?

2. 대한민국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악한 길에서 떠나 야웨의 길에 서면 한반도 통일의 길이 열릴 수 있다.

  위의 1 에서 본 분단의 이유를 야웨는 항상 주장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솔로몬이 통치하던 통일왕국시대 후반기, 즉, 아직 고대 이스라엘 왕국이 두 나라들로 분단되기 전에 야웨는 솔로몬에게 땅의 치유에 대하여 말하였다.

  내 이름을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고 그들의 땅을 치유하리라 (대하 7:14).

이 본문이 분단 왕국들의 재통일을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회개와 개과천선이 있으면 야웨가 ‘그들의 땅을 치유하겠다’고 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땅을 치유한다는 말이 무엇인가? 자연환경의 오염과 파괴를 치유한다는 말인가? 서기전 10세기 후반의 솔로몬 시대를 생각한다면 환경오염 보다는 갈등하는 백성들의 마음이나 분단된 나라를 말한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따라서, 대한민국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한반도 재통일에 대하여 신앙적인 자세로 야웨의 도우심을 요청해야 할 것이다. 한반도 재통일문제는 실로 대단히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므로 야웨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큰 일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3. 조인공의 지하에서 신앙생활하는 그리스도인들과 대한민국의 그리스도인들은 함께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조인공에 얼마나 많은 지하 교인들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런 신자들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대한민국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들과 함께 한반도 재통일에 대하여 연합적으로 기도하여야 한다. 그들이 누구인지 모르므로 함께 기도하자고 하는 메시지를 라디오나 삐라나 탈북하여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을 통하여 전하여야 한다.

  조인공에서 핍박받으며 신앙생활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대한민국의 교회들이 겪고 있는 타락이나 부정부패나 재산싸움이나 세습문제에 빠지지 않고 각자 오로지 신앙만을 지키며 살고 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재통일이 이루어지면 그들이 남쪽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앙으로 사는 법을 가르쳐 줄 수 있을 것이다.

4. 우리는 대한민국의 통일문제 정책자들과 조인공의 정부에 하나님이 개입하시도록 기도 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대한민국 정부가 하고 있는 대북정책이나 통일정책에 대하여 많은 의문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남북이 동등한 입장에서 자유민주주의로 통일하려는 것이 아니라 반헌법적으로 조인공에게 대한민국이 종속되는 어떤 방식을 추구하는 것으로 의심이 든다. 통일정책을 수행하는 양쪽의 관료들이나 관계자들에게 강력한 하나님의 주권과 인도하심이 있기를 우리는 열렬하게 기도하여야 한다. 땅에서는 그들이 일을 하지만, 정사(政事)를 주관하시는 야웨 하나님의 간섭이 있어야 일이 바로 될 수 있다.

끝.

한반도 평화통일 과정에서
탈북민의 역할






안 찬 일 박사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석좌교수

Ⅰ. 서 론 

  한반도 통일은 다가오고 있다. 우리 3만 4천여 명의 탈북민들은 북한 2천 5백만 동포의 진정한 대변인이고 그들의 진정한 자아와 이해를 대표한다고 자부한다. 우리는 자유를 찾아서 불가피하게 고향을 떠나 왔다. 그러나 우리의 결단과 현재의 삶은 단지 우리 자신의 평안과 복지만을 추구하는데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아직도 북한에 남아 있는 우리들의 친척과 친지 그리고 동료들을 위해서 그리고 궁극적으로 민족의 재결합을 위해서 누구보다도 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아직도 북한 내에서 눈과 귀가 가려진채로 권력이 가르치는 것만을 생각하고 그것만을 믿고 따르고 행동하여야 하는 불쌍한 동포들에게 바깥세상의 현실과 진실을 알려주어야 하는 책임을 통감한다. 아울러서 그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향상시킬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고 실천해 나가고자한다. 이를 위해서 우선 북한의 현 정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요청한다.

  첫째, 북한 정권은 엄청난 비용이 드는 핵무기 개발에 앞서 먼저 열악한 주민복지 개선에 힘을 쓰기를 촉구한다.  

  둘째, 북한 정권은 주민에게 사상과 언론 종교의 자유를 누리도록 보장해야 한다. 기독교를 탄압하고 생각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은 반문명적 처사로 특히 북한 지식인들의 각성을 촉구한다. 

 셋째, 북한 정권은 주민들이 자유롭게 해외와 교류하고 통신하며 여행할 수 있도록 허용하라.  

  끝으로 모든 권력은 궁극적으로 인민을 위한 것이다. 권력의 형성과 행사에 인민이 자유롭게 참여하고 비판을 포함하여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여야 한다. 특히 최고 권력자는 잘못된 결과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한다. 이 같은 요구는 21세기의 일반적인 상식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민족의 가장 큰 과제는 우리 모두가 더불어 사는 것 즉, 통일이다. 그러나 그 통일이 현재 북한 같은 상황이 되는 것이라면 누가 그것을 반기겠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의 복음화이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는 반드시 북한 땅에 복음화된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할 것이다.



Ⅱ. 기독교적 선교자로서의 탈북민 역할


1. 탈북민의 기독교 신앙 현황


  탈북의 사회적응 교육기관 하나원을 나설 때 설문 응답자의 90%가 기독교인이지만 3년 뒤 이 퍼센티지는 62%로 감소한다. 이것은 단지 종교적 입장에서만 해석해서는 안 되는 다른 문제와 관련된다. 즉 대부분 탈북민들이 생활보호 대상자로서 생계를 해결해야 하기에 종교적 믿음보다 먼저 삶의 전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감의 결과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북민 10명 중 여섯 명 이상이 기독교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집단탈북은 대체로 고난의 행군기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북한 상황은 아사와 질병이 난무하는 아비규환의 절정이었다. 북한의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천 년을 두고 흘릴 눈물을 다 흘려 보았고, 천 년을 두고 겪을 시련을 다 겪어 보았다. 우리는 영원히 잊지 않으리라” (로동신문, 2000년 10월 3일 자. )

  이런 역경을 겪은 대부분의 탈북민들에게 대한민국은 말 그대로 ‘천국’이었다. 출애급기가 있다면 탈북민들에게 생지옥 같은 북한 탈출은 말 그대로 ‘출북한기’라고 할 수 있다. 생과 사의 경계선을 직접 경험한 탈북민들에게 초기 성경 말씀과 하나님의 진리는 쉽게 수용되지만 오래 가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앞서 언급한 대로 삶의 전쟁이라는 요인도 있지만, 기독교의 원리는 마치 북한 주체사상과 김일성 우상화와 유사하다는 혼돈이 그 원인으로 되고 있다. 특히 매주 교회에 나가야 하는 신앙생활을 마치 북한의 당 및 근로단체 조직생활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탈북민들은 탈북 과정에서 겪었던 고난과 시련의 기억을 쉽게 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북한에서 억눌렸던 자유에 대한 욕구 실현을 위해 자본주의 사회의 물질문명에 쉽게 함몰되어 버리기도 한다. 따라서 북한에 연을 두고 있는 탈북민 기독교인들을 통해 북한의 복음화를 구상하고 실천하는 일이야말로 평화통일로 가는 길에서 반드시 준비해야 할 중요 통일노력인 것이다. 기독교적 토대가 척박한 북한 땅에서 복음화는 외부로부터의 수혈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현실이 더욱 그렇다.

2. 탈북민들을 통한 북한 복음화

  현재 북한에는 단지 두 개의 기독교 교회(봉수교회, 칠골교회)와 한 개의 성당(장충동성당)이 존재한다. 최소한 북한에는 현 단계에서 100여 개의 교회를 세워도 그 수요는 모자란다고 볼 때, 북한의 교회설립은 가장 절박한 문제로 대두된다. 현 북한 체제가 존재하는 한 과연 몇 년을 더 기다려야 북한 땅에 교회가 늘어날지 막막한 실정이다. 예수님께서는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하는 것이니라” (요 15;12)라고 말씀하셨다. 한국 교회와 탈북민 그리스도인들은 종교의 불모지에서 살아가고 있는 북한 주민들을 위해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누가 그 역할을 잘 감당해 낼 수 있을 것인가? 이는 선교학적 시각으로 보더라도 현지인들이 더 적합한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아직 한국 교회는 당연히 자신들이 주체가 되어 북한 지역에 교회개척을 이뤄야 한다고 여기고 있다. 이는 너무나도 위험한 발상인 것이다. 한국 교회는 탈북한 그리스도인들을 아직 모두 포용하기에 부족한 점이 많다. 그들의 관심은 양적인 선교정책을 고집하며 그 방식이 선교의 성공으로 여기고 있다. 

  34000여 탈북민들은 북한 각지에서 마치 선발된 것처럼 다양한 계층이 남으로 왔다. 이들 중 현재 목사 안수를 받은 분이 40여 명을 상회하며 전도사와 선교사 자격을 취득하거나 현재 신학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젊은이들도 100여 명을 넘어서고 있다. 적어도 북한 땅에 당장 100개의 교회를 세워도 영적 지도를 감당할 기독교 지도자는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 교회는 이제 북한 출신 탈북민 목사님과 선교사들을 지역별로 담당시켜 교회 건립을 준비하는 장기적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자기 지역에 교회를 세우게 된다면 인연, 학연, 혈연 등으로 순식간에 북한의 복음화를 촉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Ⅲ. 한반도형 프라이 카우프, 탈북민 송금

  널리 알려진 대로 많은 탈북민들의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있는 가족들에게 정상적으로 송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설문조사 결과 51.7%의 탈북민들이 실제로 송금하는 사실에 대하여 인정하였다. 반대로 송금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31%로서 상당한 가구가 송금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들을 드러냈다고 하겠다. 여기서 말할 수 없다 7.5%와 무응답 9.8%로 나타났는데 이것은 송금에 대한 거부감이나 부정적인 생각 때문에 나타나는 응답이 아니고, 오히려 경제적 여력이 없어서 송금을 하고 싶지만 송금을 못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 혹은 아쉬운 마음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연령대별로 응답이 다소 차이 나는데 20대는 송금한 적이 없다 33.2%, 송금한 적이 있다 28.2%로서 다소 높다. 그리고 60대에서는 송금한 적이 있다와 없다 모두 66%로 나왔다. 나머지 연령대에서는 모두 50%를 넘는 것과는 대조적이지만 이것은 이 연령대는 독자적인 경제활동을 하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구체적으로 연평균 1,000달러이상을 송금 47.8%로서 가장 많았고, 2,000달러 송금 26.5%, 3,000달러 송금 14.2%, 4,000달러 송금 7.0% 순이었다. 매우 제한적이지만 2%의 응답자가 연 평균 5,000달러의 거액을 송금하고 있음을 밝혔다. 송금액수는 전적으로 심정적인 문제가 아니라, 경제적 여력에 따른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남한에 정착한지 오랜 즉 김정일 정권시기 탈북한 대상자들이 김정은 정권시기 탈북한 대상들보다 연 평균 더 많은 송금을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김정은 정권 이전과 이후에 입국한 탈북민들의 송금액을 비교하면 1,000달러 송금은 전자와 후자 각각 45% vs 58.6%이고 송금액수가 커지면서 2,000달러 대에서는 27.2% vs 21.4%, 3,000달러대에서는 15.2%, vs 10%, 4,000달러대에서는 7.3% vs 5.7%로서 확실히 높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다. 탈북민들의 송금이 북한시장 활성화와 사적영역의 확장과 같은 바람직한 효과를 유발한다면 이들이 필요한 송금을 할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다.

  본 문항에서는 설문 응답자를 제외한 다른 탈북자들의 송금현황에 대해서도 파악하려는 목적 하에 추가적인 조사를 진행하였다. 결과 탈북민들의 55.2%인 221명이 다른 탈북민들도 송금을 하고 있는 사실을 확인해주었다. 그리고 22%는 송금사실을 모른다고 대답을 했고, 11.5%는 말할 수 없다, 11.2%는 무응답 하였다. 이처럼 본인의 송금사실을 묻는 13번 문항에 대한 추가적인 설문조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전체적으로 거의 50%이상의 탈북민들이 북한 가족에서 정기적인 송금을 하고 있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연령별 응답특성을 보면, 20대인 경우 있다 33.4%, 모른다 25.6%, 말할 수 없다 25.6%, 무응답 15.4% 로서 다른 연령대들에 대하여 송금 사실을 많이 알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것은 부모들이 하는 일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는 사실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독신생활을 하는 20대 탈북민들은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북한에 직적적인 송금을 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고 한다.

  재북 가족들이 송금 받은 돈을 어디에 사용하는가는 사실 탈북민들의 대북송금의 유용성 및 북한사회에 미치는 영향 분석에서 중요한 참고가 될 있다. 조사 결과, 생계비가 가장 높은 67%, 장사밑천 20.8%, 탈북자금 4.2%, 주택구입 4%,기타 4% 순으로 나타났다. 북한경제의 파탄과 유엔의 대북제제 속에서 매우 어렵게 생활하는 북한의 가족들은 탈북민들로부터 송금된 돈의 대부분을 생계유지에 쓰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면서도 장사밑천과 주택구입, 탈북자금 등에 사용하여 북한사회에서 나름의 장사와 생활안정을 위한 경제활동에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탈북민 대북송금의 의미를 부각시켜 준다.

  성별 분석을 본다면 탈북민 남성과 여성이 재북 가족들의 송금 사용처의 추정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근사한 패턴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북한의 심각한 경제사정과 그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가족의 경제활동을 바라보는 시간이 남녀가 다를 수 없기 때문인 것 같다. 연령대별로 송금사용처의 추정은 다소 다른 패턴을 보이고 있다. 20대의 경우에는 탈북자금유용에 12.8%, 50대는 10.3% 로 응답하였고, 반대로 30대는 1.0%, 40대는 2.9% 로서 상대적으로 낮게 응답하였다. 아마도 20대는 본인들이 부모가 보내준 송금으로 탈북을 한 경험들이 많을 것이고, 자녀들을 탈북시키기 위하여 40대가 가장 많은 돈을 쓰다 보니 이와 같은 패턴이 나오는 것을 추정된다.


Ⅳ. 통일정부 구성과 탈북민의 역할

1. 정부 구성에서 탈북민의 역할

 통일은 독일의 사례에서 보듯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올 수도 있다. 통일의 기본전제는 대한민국 주도하에 평화적으로 실현되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계승하고 유지해야 한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북한 체제통합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통일 한국에서 발생되는 여러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며 통일로 인해 발생되는 행정수요를 효과적이며 효율적으로 충족할 수 있는 능력있는 ‘통일정부’의 조직체계를 구축하여야 한다. 

  이북5도청은 바로 이런 북한 지역의 행정수요를 보장하기 위해서 만든 행정조직이다. 대한민국에게는 언젠가는 수복해야 하는 지역. 엄밀히 말하면 미수복 경기도와 미수복 강원도 지역(법률에서는 이를 '이북5도'와 구별하여 '미수복 시·군'으로 지칭한다)도 있으니 미수복지역 전체를 '이북 5도'로 일컫는 것은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그래서 법률에서도 미수복 경기도 및 강원도를 포함한 미수복 지역 전체를 총칭할 때에는 '이북5도 등'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이북5도법 제4조). 원래 미수복 경기도와 미수복 강원도 지역은 이북5도위원회가 관장하지 않고 경기도지사와 강원도지사가 직접 관장하도록 하였으나, 2015년 5월 18일 이북5도등에관한특별조치법이 개정되어 2015년 8월 19일부터 이북5도위원회 위원장을 맡는 도지사가 미수복 경기, 강원도 지역의 시·군 사무까지 관장하게 되었다.

  따라서 현재 기준으로 이북5도위원회라는 명칭은 부분적으로 이름과 실제가 다른 것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겠다. 다만 이는 사무관장의 편의를 위한 것이지, 미수복 경기도와 미수복 강원도가 이북 5도라는 용어의 정의에 포함된다는 뜻은 아니다. 이들은 모두 휴전선 이북에 위치하여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한국의 땅은 아니며 북한의 지배하에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미수복 영토'라 하여, 헌법 제3조(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를 들어 엄연한 대한민국의 영토로 간주하고 있다.

  현재 탈북민들의 출신 지역 분포를 보면 함경남북도에서 온 사람들이 제일 많다. 하여 탈북민들 속에서는 “북한체제에서는 함경도가 홀대 당하지만 통일에서는 우리가 선구자”라는 재미있는 말들이 있다. 실제로 함경도는 장마당경제에서도 타 지역에 비해 앞서가고 있으며 탈북민들의 송금으로 생활수준도 나날이 향상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따라서 탈북민 엘리트들로 이북5도청을 대체해 나가야 한다. 이북5도청의 지사, 군수 등은 이제 1세대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세월은 그들이 항상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도록 유수처럼 흐르다보니 갈수록 돌아가시는 분들이 늘어가고 있다. 실향민 2세들에게 북한 지역을 맡기는 일은 쉽지 않다. 그들은 모두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교육받은 세대로서 선대의 고향과 향수와는 무관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통일을 대비하여 탈북민 엘리트들로 이북 지역 행정 기관 담당자를 임명하고 꾸준히 교양하면서 사회통합과 행정재건, 사회발전 등을 준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여기서 통일 독일의 경험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통일 후 연방정부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었던 것은 동서독간 체제통합과 구동독지역의 재건 사업들의 조정메커니즘의 부재였다. 따라서 이러한 조정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98년부터 연방정부의 공식적인 기구로서 연방 총리실에 ‘신연방주 특임관을 설치운영하였다. 신연방주 특임관의 기능 및 역할은 신연방주 관련 사안에 대해 각 부처의 통합과 체제통합 및 구동독지역의 재건을 목적으로 한 과제를 조정하는 데 있었다.

  탈북민들은 적어도 북한 자기 지역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장점이 있다. 산업과 농촌, 복지 등에서, 나아가 인프라에서 어느 부분이 가장 취약하며 그것을 풀어나가는 데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탈북민 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현재 미국을 중심으로 북한 임시정부 형태인 ‘자유조선’ 2017년 3월 4일에 '천리마민방위'라는 이름으로 인터넷 도메인이 생긴 것으로 정체가 드러났고,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의 신변을 보호해주었다고 주장하는 북한의 반정부 비밀단체이자 임시정부. 현재까지도 구체적인 목적, 소재지, 구성원 명단 등이 대부분 미공개인 단체이다. 리더격 인물로 알려진 에이드리언 홍 창과, 소속 인물로 크리스토퍼 안이 존재한다는 것이 알려진 구성원의 전부. 과거의 명칭은 천리마민방위였으나, 2019년 3월 1일, 제100주년 3·1절을 맞이하여 중대발표를 하면서 「자유조선」이라는 이름의 임시정부를 설립한다고 선언하였고, 주 스페인 북한 대사관을 습격하여 컴퓨터를 탈취, 미국 정부에 정보를 넘겼다고 주장하여 실질적인 북한의 체제에 대한 파괴 공작을 개시하였다. 엠브레흐츠 주한 네덜란드 대사도 관련 영상을 확인했다고 한다. 하지만 김한솔과 관련된 사항은 언급하지 않았다. 한국과 북한의 대사를 겸임하는 입장에서 외교적으로 매우 민감한 문제를 건드리면 안 되기 때문.

  이 설립돼 김정은 체제의 대체를 주장하고 있으나 거기에 탈북민들은 눈에 띠지 않는다. 무엇을 말하는가? 적어도 북한을 놓고 붕괴는 있어도 재건은 없는 실정인 것이다. 34000 탈북민들에게 행정 능력을 길러주고 꾸준한 오리엔테이션으로 북한 재건의 기회를 마련해 주어야 할 것이다.

2. 정당 창당과 탈북민의 역할

 북한은 70년이 넘도록 노동당 1당 체제로 유지되어 오고 있다. 북한에도 통일 후에는 참다운 정당정치 제도가 안착되어야 한다. 정당정치는 의회정치(議會政治)와 분리해서는 생각할 수 없는 정치형태로, 정당이 정치적 실권을 가지는 정치이다. 그것은 복수(複數)정당제를 전제로 하는 것이 보통이며, 일당독재의 정치형태도 형식적으로는 정당정치임에는 틀림없으나 엄밀한 의미에서는 그러한 경우를 정당정치라고는 하지 않는다.  

  의회정치에서는 다수결원칙 못지않게 소수의 의견도 존중되어야 하므로 복수정당제는 물론이고 반대입장의 야당이 존재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각 정당은 정치과정에서 일반대중이나 이익집단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집약함과 아울러 결집된 의사를 정부에 전달하는 대변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정당은 선거를 통하여 일반대중의 참여를 조직화하는 한편, 의회뿐만 아니라 정부까지도 장악함으로써 정권담당의 기능을 수행한다. 따라서 정당정치는 의회정치와 민주정치를 실제로 가능하게 하는 역할을 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G.라이프홀츠는 "20세기의 현대민주주의국가는 국민주권의 원리에 입각하고 있으면서 정당은 국가적으로 조직되지 않을 수 없고, 정당을 통하여 19세기까지의 자유롭고 대의적 ·의회적인 민주정치가 20세기의 국민투표적 민주정치로 변천하였다"라고 주장하면서 현대의 민주정치가 정당정치로 특정지어진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탈북민들을 통한 북한 정당의 재건을 검토해 볼 수도 있다. 예로 조만식 선생의 사회민주당은 현재 서울에 그 본산을 두고 있다. 다만 그 담당자들이 너무 연로해 정당의 모습을 드러내고 활동하기 어려운 것이 한계로 되고 있다. 조만식 정당 사회민주당은 북한 민주주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북한에 소련군이 진주하지 않고 공산당이 창당되지 않았다면 아마도 사회민주당이 여러 번 정권을 잡았을 지도 모른다. 탈북민 엘리트들이 그 정당을 계승하여 평화통일 시 북한 정당정치 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면 이 또한 착실한 통일준비로 될 것이다.


Ⅴ. 결 론

  탈북민 34,000명은 분단체제 한반도의 통일을 준비하라고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예비 전령들이라고 생각한다. 만약에 남한에서 북한으로 이 정도 규모의 대이동이 있었다면 북한 정권은 그 역량을 벌써 활용하였을 것이다. 물론 선의 체제에서 악의 체제로 대이동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마련이다. 북한의 국력이 우리 보다 앞서 있던 1974년 이전 휴전선 상에서의 월남과 월북을 비교해 보면 월북인 숫자가 훨신 많았다. 탈북민 어느 누구도 현재의 안주에 만족하지 않는다. 

  대부분 탈북민들은 통일준비 과정과 북한의 민주화 자유화에 기꺼이 동참할 각오가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통일세력에 과연 34,000 탈북민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이번 제19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구성에서도 탈북민의 숫자는 줄어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관례적으로 우리 정부는 대체로 북한 주민보다 북한정권과 통일 탁상공론에 집착해 왔다.

  적어도 기독교계만이라도 평화통일에 탈북민들을 앞세워야 할 것이다. 고향선교, 지역선교, 북한선교, 통일선교라는 큰 그림을 그리고 적재적소에 탈북민 기독교인들을 안배하고 꾸준한 교육을 실시하여야 할 것이다. 통일 후 남북한 사회통합과정에서도 기독교 복음보다 대안은 없다고 본다. 70년 이상을 갈라져 살아온 남북한 사회 도처에 갈등과 적개심, 이질감 등이 도사리고 있다 미국의 종교관련 통계사이트인 '어드히런츠닷컴'에서는 북한의 주체사상이 세계 10대종교에 해당된다고 통계자료를 발표하였다. 북한의 주체사상을 하나의 종교로 분류하고 신도 수는 1천 9백만 북한 주체사상은 세계 10위 규모의 종교로 랭크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랑과 용서가 없는 사회통합은 있을 수 없다. 북한 각지에 교회를 건립하고 아름다운 찬송가가 울려 퍼지고 너도 나도 성경을 읽게 된다면 원수는 단숨에 용서될 수 있다. 이와 같은 노력은 지금부터 착실히 준비해야지 어느 날 갑자기 하려면 도저히 이룰 수 없는 난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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